도둑과 바보

by 김남희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기술된 로마서 8장 26절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라고 하는 조세희 선생의 말을 더 좋아한다. 송구영신 예배 때 뽑았던 수많은 ‘올해의 말씀’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도둑 아니면 바보라는 선생의 말은 17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


이 말은 2008년 12월 3일 명사 초청 특강에서 언급되었는데, 당시는 이명박 정부 시기로, 의료 민영화, 언론 길들이기, 공공기관의 민영화 추진, 무엇보다도 여론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적 의사 결정으로 사회가 뒤숭숭했다. 당장 당해 4월에 광우병 발병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전면적으로 수입하는 내용이 골자인 한미 쇠고기 협상이 있었고, 그에 따른 반발로 5월에 광우병 쇠고기 촛불 집회가 대규모로 일어났다. 12월이면 촛불 집회가 마무리된지 몇 달 안 되는 시점이었고 대통령 지지율이 급전직하했다가 겨우 회복하는 단계였다. “그는 누가 도둑이고 누가 바보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조세희 선생의 말을 전하는 2008년 12월 5일 자 프레시안 기사에서는 선생의 말을 이렇게 해석하는데,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이며 정치적으로는 권위적이고 독단적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 당시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일베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떠돌아다녔을 만큼, 극우 커뮤니티도 융기하던 시점이었으며 그에 따른 여론 조성 내지는 보수 시민들의 결집도 만만치 않았던 시기였다. 저항에 따른 백래시가 시작되던 때, 백래시 뒤에 정부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풍문이 돌았던 때, 그래서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게 되던 때. 그럼에도 ‘이 시간’을 ‘행복하다’ 믿을뿐더러 ‘행복한 시간’ 임을 남에게 강요하는 인간들을 도둑 아니면 바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게 되던 때.


그런 의미에서 2008년은 2025년의 모더니티를 예비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쇠고기 집회는 선동이고 ‘뻥’이며, 사회 비판은 게으르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떼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무럭무럭 자라 시사 평론가나 보수 유튜버로 성장했다. 형들 따라 디시인사이드를 들락거리던 디시 키즈들도 어른이 되어 한국 사회의 통상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양극화나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함 탓으로 돌리며 잘도 지껄여대고 있다. (그게 커뮤니티식 쿨이기 때문일까) 스물몇 살이나 서른 살쯤에 1억도 못 모으면 게으르다고 가스라이팅 하는 숏폼 콘텐츠들을 보라. 그러기에 자기들 말을 듣고 자체 컨텐츠도 사달라고 말하는 그들은 도둑이며, 1억은 오버지만 저축을 못하면 쓰레기라고 댓글을 달거나 인용을 하는 것들은 바보다. 전자는 타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면서 자신을 형성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보려 하기 때문이며, 후자는 전자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 빈곤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가족의 질병이나 사업의 어려움 등으로 가계 살림이 어려워지면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저축을 꿈꾸지 못하게 된다는 걸 모른다. 한국 노인들의 빈곤 문제가 그들이 노후 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본인들은 ‘영끌’해 저축해서 노후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사회의 불경기와는 상관없이. 이쯤 되면 성경을 근거로 고대에는 공룡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게 더 합리적인 것 같다. 새해에는 경기도 더 나아질 필요가 있겠지만 도둑과 바보들이 판치면서 지금 이 시간을 ‘행복하다’고 윽박지르는 일이 없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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