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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n 22. 2023

할머니와 빨래.

작은아버지 댁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가끔 우리 집으로 오셨다. 일주일에서 이 주 정도 머물다 가시는데, 밑반찬도 만들어 주시고 청소나 빨래를 하시며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할머니의 반찬은 다 맛있지만, 그중에서 깻잎무침은 단연 최고였다. 큰 대아 안에 무질서하게 깻잎을 쏟아 넣고 준비한 비법 양념을 부어 빨래 빨 듯 박박 문지른다. 한껏 숨이 죽은 결 사이사이로 양념이 잘 스며든 깻잎을 다시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펼쳐 통에 담으면 먹음직스러운 모양새를 갖춘다. 할머니 비법에 풋내도 사라지고 양념과 혼연일체가 되어 냉장고 안에 머물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할머니가 오시면 늘 깻잎무침부터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빨래는 또 얼마나 깨끗이 하시는지 세탁기 안에서 설렁설렁 빨아낸 바닥이 시커먼 양말이 백옥같이 새하얘져 얼굴을 닦아도 이상하지 않다. 할머니가 빨아 준 새 하얀 양말에 교복을 입고, 검은색 단화를 신으면 마치 모범생이 된 듯 기분이 좋아진다. 할머니가 가시면 하얀 양말 몇 개 몰래 숨겨두고, 좋아하는 선생님 수업이 있는 날이면 꺼내 신곤 했다.


봄 소풍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어김없이 할머니께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늘 하듯 깻잎무침을 만들었고 우리 식구들의 빨래를 하셨다.


그런데 소풍때 입기위해 벽 옷걸이에 고이 걸어둔 검은색 바지를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 눈에는 때가 묻은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빨래 본능을 장착한 할머니께서 그것을 빨아버리면서 사건은 벌어졌다.


잘못 빤 바지가 군데군데 물이 빠져 얼룩무늬 옷이 되어 버렸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바지였다. 당신을 탓하며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할머니에게 나는 짜증이 먼저 날아갔다. 속상함이 넘쳐 결국 버릇없이 화를 내고 말았다.


“이 뭐꼬? 모레 소풍 때 입을라고 아낀긴데 우짜노 옷걸이에 가마이 있는걸 빨아뿌모 우짜노 말이다 인자 뭐 입고가노?”


거의 울상이 되어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빨라놓은 다른 빨래위로 내 바지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에게 늘 기죽어 사셨던 할머니가 손녀 앞에서도 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방바닥을 닦다 만 애꿎은 걸레만 만지작거렸다. 작은 덩치가 움츠려 들어 더 작아진 할머니 모습이 속이 상한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할머니를 향해 소리를 지른 대가는 부메랑이 되어 처참하게 돌아왔다. 걱정과 충고를 무장한 아빠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고 엄마의 손은 내 등짝을 여러 번 때렸다. 큰언니에겐 싹수없는 동생이 되었다. 작은 언니에겐 거침없고 시원한 욕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동생도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철없던 나는 폭격처럼 쏟아지는 가족들의 돌림 노래보다 소풍에 입고 갈 옷이 망가져 버렸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내게 할머니가 흰색 바지를 내놓았다. 얼룩덜룩 색이 빠진 바지를 발바닥이 검은 양말을 하얗게 만드는 할머니의 주특기를 발휘해 새하얗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모양새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입어보니 원래 사이즈에 색만 바뀐 거라 잘 맞았다. 당장 소풍 때 입고 갈 바지가 생겼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할머니를 얼싸안고 전날의 미안함에 고맙다며 갖은 애교를 부렸다. 할머니도 그제야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던지 웃었다. 그렇게 당신의 실수를 해결하시고 다시 작은아버지 댁으로 가셨다.

 

나는 할머니가 새하얗게 만들어 준 바지를 입고 소풍을 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즐겁게 수다도 떨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쁠 것 없는 소풍이었다. 손수건 돌리기하기 전까지는.

등 뒤에 놓인 손수건을 발견하고 얼른 일어나 도망가는 친구를 신이 나서 쫓았다.

그 순간 가랑이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주춤했고, 설마 하는 마음에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가랑이 사이로 시원함이 스며들었고, 살과 살이 맞닿는 끔찍함에 소름이 돋았다. 달리던 두발의 속도감이 점점 느려졌다. 결국 모든 동작을 멈추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상한 나의 행동에 친구들의 눈빛은 하나둘 걱정으로 변했고, 몰려든 시선에 차마 가랑이 사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쏟아지는 걱정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창피함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친구에게 빌린 겉옷을 앞뒤로 묶어 겉모습은 그럴듯해 보이는 치마로 만들어 가랑이가 보이지 않도록 긴급 처방을 한 채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창피함은 짜증으로 바뀌었다. 가랑이 사이가 찢어진 바지를 벗어서 던져버렸다. 손수건 돌리기 순간의 기억이 다시 밀려들자 내가 했던 동작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마치 슬로우비디오처럼 천천히 돌아갔다.


“우짜노, 내 가랑이 누가 봣시모 어짜노!”


그때는 신경 쓰지 못했던 민망함이 머리를 스치자 감당할 수 없는 창피함이 내 온 몸을 때렸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마치 떼쓰는 아이처럼 팔과 다리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방바닥 구석구석을 누비며 큰소리로 울어대는 내 모습이 가관이었다. 가게에 있던 엄마가 울음소리에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얼굴을 보자, 모든 것이 엄마 탓인 듯 더 악을 써가며 억울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봐라, 옷이 이기 뭐꼬! 걸레맹키로 다 헤짓다아이가. 참말로 쪽팔리서 뒤는줄 알았다아이가. 내는 인자 부꾸라바서 학교를 우째 댕기것노.”


다 큰 애가 온 몸으로 울어대는 모습을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보던 엄마가 던져진 바지를 집어 들어 찢어진 부위를 확인했다. 피식거리는 입꼬리가 차마 속상한 딸 앞에서 소리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할매가 락스물에 바지를 담갓는갑다.”


당신의 실수로 인해 손녀에게 미안한 할머니가 어떻게든 해보려는 맘으로 아예 색을 빼버렸다. 양말을 빨 때 옆에 담가 둔 바지에 락스 물이 튀어 얼룩무늬가 생겼고, 그걸 다시 락스 물에 담가 백옥같이 하얀 바지로 만들어 버렸다. 락스를 한껏 흡수한 천이 이미 너덜거리고 있었던 걸 모르고 다리를 힘껏 벌려 뛰자 견디지 못한 바지가 찢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락스를 쓰는 것도 맨손으로 빨래하는 것도 말렸지만, 그렇게 빨아야 깨끗하다는 시어머니의 고집을 며느리가 꺾을 수 없었다. 고무장갑이라도 꼭 끼라는 했지만 그것마저도 할머니는 잘 지키지 않으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오시면, 이번 일로 할머니에게 버릇없이 굴지 말라는 조건으로 새 바지를 사주었다. 할머니는 다시 우리 집으로 오셨고 늘 그렇듯이 맛있게 깻잎무침을 만들었다.

세탁기가 미쳐 다 벗겨내지 못한 묵은 때도 손수 빼셨다. 락스 물을 먹고 하얘진 양말과 수건들은 제 생을 다하지 못하고 너덜거리며 사라져 갔다. 하지만 할머니는 빨래를 멈추지 않으셨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말리기보다는 양손 가득 흰 양말과 수건을 사서 차곡차곡 재어 놓았다.

 

할머니는 당신이 힘이 없어 자식들에게 해 준 것이 없다는 말을 늘 중얼거리셨다. 그래서 자식들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제일 잘하는 빨래와 음식을 함으로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음을 기뻐하셨다. 엄마는 힘드시니 그만하시라고 말리기보다는 할머니가 오시면 늘 서둘러 겉옷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할머니가 작은 양말이나 수건만 빠시게 하셨다. 걸레마저도 새하얗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시곤 했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빨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당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 후에도 할머니는 늘 빨래를 했지만 언젠가부터 하나 둘 얼룩이 남겨졌다. 마치 할머니의 손과 얼굴에 검은 얼룩이 생겨 사라지지 않듯 다시 빨아도 이젠 그 얼룩은 사라지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의 빨래는 더 이상 새하얀 눈부심을 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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