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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n 22. 2023

할머니의 쪽진 머리.

나는 어릴 적부터 관심이 있었던 미용사가 되기 위해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원을 다니며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미용실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나는 방학 한 달간 만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동네 미용실이라 바쁘지 않을 거라 안심한 심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내에서 다년간 실장으로 지내다 오픈을 한 원장님은 실력만큼이나 단골이 많았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종일 서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일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학이 되자 작은아버지 댁에 계시는 할머니가 어김없이 오셨다. 정확하게 가운데를 가르고 적은 숱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 가지런하게 빗어 넘겨 묶어도 한 줌도 안 되는 머리를 목 위에서 꼬아 비녀를 곱은 쪽 찐 머리.


기억 속에 한 번도 바꾸지 않은 할머니의 스타일은,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늘 움츠려든 어깨를 제대로 펴지 못하며 살아가시던 소심한 할머니와 어딘지 모르게 잘 어울렸다.

그러나 손이 많이 가는 꼼꼼한 스타일의 쪽 진 머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흔하게 남아 있지 않던 쪽 진 머리는 또 하나의 할머니 자신이었다. 어떤 멋지고 편한 스타일을 권해도 바꾸지 않는 할머니의 고집이기도 했다.


방학이지만 늦잠도 자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던 난, 집으로 오신 할머니에게 투정만 늘어놓았다. 할머니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바빠서 더 힘들었던 날은 투정을 가장한 짜증까지 부렸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버릇없는 심술조차 기특하게 여긴 할머니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하며 출근하기 전 밥을 먹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의 마음과 노력에 관심 없던 난 출근 시간 5분 전에 일어나 뛰어가기 바빴다.

초저녁잠이 많은 할머니셨지만, 늘 늦는 나의 퇴근을 기다렸다. 거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부엌으로 가서 종일 배고프게 일했을 거라는 걱정으로 밥을 차렸다. 하지만 그것마저 먹지 않고 쓰러져 잠이 들기 일쑤였다.


“하이고, 아 다리가 이레 퉁퉁 부어서 우야노.”

잠결에 살인지 붓기인지 구분이 안 가는 통통한 내 다리를 주물러 주는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져 선잠을 깼다.

“고사리거튼 손이 약을 탓뿟네 약을, 쯧쯧 이리 생살이 터지가 올매나 아파시꼬.”

중화 독에 갈라진 손을 붙잡은 할머니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지만, 이상하게 심장이 간질거려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뒤척거리며 손을 빼 버렸다. 다시 잠들 때까지 할머니는 나의 터지고 부은 손과 발을 연신 주물렀다.

다음날도 할머니가 어김없이 밥상을 차려 내 앞에 내밀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번엔 밥을 꼭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우걱우걱 손녀 입으로 들어가는 밥에 당신의 배가 부른 듯 만족스럽게 바라보셨다. 할머니는 내가 먹는 모습이 복스럽다며 항상 흐뭇해하셨다. 어쩜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양껏 먹어주는 것이 내가 당시 할머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도였을 것이다.


늘 그렇듯 할머니는 당신이 머물 수 있을 시간 동안 머무시다 작은아버지 댁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며칠 뒤 나의 첫 아르바이트도 끝이 났다.

첫 월급을 받은 내게 엄마 아빠는 필요 없으니 할머니께 내복이라도 선물하라는 당부가 있었지만 내 계산엔 처음부터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없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 시작한 일이었고, 당연하듯 난 갖고 싶었던 ‘CD플레이어’를 샀다. 월급을 한방에 날려 엄마에게 두고두고 혼이 났지만 갖고 싶은 걸 가진 나는 그깟 잔소리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떠났다. 서울생활을 하다가 한 번씩 집으로 내려올 때면 부모님은 언제나 작은아버지 댁에 계시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짧은 휴가 기간에 친구들 만나기에도 바빴던 난 할머니께 드리는 인사를 가끔 건너뛰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혼이 났다.

하지만 난 정말 대수롭지 않다 여겼다.

빛이 나던 나의 이십 대에 할머니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계신다는 걸 애써 모른척했다.


그러던 중 내가 다니는 미용실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의도치 않게 한 달여 간의 휴가가 생겨 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늘 그렇듯 아빠는 할머니께 인사를 다녀오라고 했다. 귀찮았지만 이번엔 머무는 시간이 길어 두고두고 들을 잔소리를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얌체 같은 마음으로 순순히 할머니께 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작은 방에 누워계셨다. 마지막까지 지켜낼 것만 같았던 기름을 발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갈하던 쪽 찐 머리는 싹둑 잘려 있었다. 고집스럽게 지켜내시던 쪽 찐 머리가 사라지자 더 왜소해지고 가여워지셨다.


마치 삼손이 머리가 잘리면 힘이 사라진 것처럼 할머니도 힘없이 누워만 계셨다.

“할매, 내 난주 멋진 미용사되믄 할매 머리 억수로 예쁘게 해 주게.”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기쁨에 날 뛰어 신나서 했던 그 말을 난 언제 지키려 했던 걸까.

나의 시간보다 할머니의 시간은 빨랐다.

한 손안에 들어오는 할머니의 가녀린 다리를 주물렀다. 묵직하게 목에 걸려 끝내 튀어나오지 못하는 말 대신 여신 할머니의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언젠가 할머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며칠 뒤 나는 가위를 챙겨 다시 할머니에게 갔다. 작은어머니 도움을 받아 누워만 있어 엉망인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다.

“글안해도 어무니가 니가 예삐게 잘라준다 햇다믄서 기다리싯다.”

작은어머니의 말에 가위를 잡은 내 손이 떨렸다. 빨리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은 이내 죄책감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쪽 진 머리 대신 반듯한 짧은 머리를 하시고.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손녀가 당신으로 인해 힘들까 봐 사죄하는 시간을 주셨던 건 아닐까.


내가 예쁘게 잘라 준 머리를 한 할머니의 시간이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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