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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l 10. 2023

1994년 별이 빛나는 밤에. 1

20등.

라디오에 한창 사연을 보내 선물도 제법 받던 고등학교 시절.


광고 방소 하나에 귀가 번쩍 띄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매년 여름 개최하는 캠프를, 이번에는 이문세가 DJ 10주년을 맞아 전국 고등학생 1, 2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3학년이었다면 방바닥을 치며 미친 듯이 뒹굴었을 것이다. 억울해서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2학년이었다. 이 얼마나 행운인가.


2박 3일로 진행하는 캠프의 비용은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한 보험료 단돈 천 원.


자는 것은 각자가 챙기고 간 텐트를 치고, 끼니도 쌀과 반찬을 싸가서 해 먹어야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캠프가 아니던가. 밤마다 당대 유명한 가수들이 와서 공개방송 녹화 명목으로 공연하고, 연예인들과 캠프파이어도 하고, 영화감상까지 하는 황홀하고 완벽한 프로그램까지 짜여 있었다. 지방에서 사는 아이들은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기회였다.

 

그렇기에 꼭 당첨되고 싶은 복권과도 같았다.


전국에서 이천 명을 모으는 규모가 큰 행사였다.


내가 사는 진주에 할당된 인원은 40명이었다. 2인 1조이기에 사연이 뽑히는 사람은 20명에 불과했다. 진주에 사는 고등학생이 몇 명인지는 몰라도 무조건 20등 안에 들어야만 했다. 전교 아니, 반에서도 20등 안에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나였다. 그런데 진주시에서 20등 안에 들라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전국에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에 사연을 보내 여러 번 뽑히고 상품까지 탔으며, 생방송 중에 ‘이승환’과 하는 전화 통화에 연결되기도 했었다. 이 정도 이력이면 도전에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공부를 그리도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 나의 인생이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들, 아마도 나란 아이는 더 열심히 사연을 쥐어짜고 있을 것이다.

 

그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진주시에서 20등 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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