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엽서로 보내는 사연은 한번 잘못 써서 망치게 되면 엽서와 우푯값이 같이 날아간다. 그래서 먼저 연습장에 머릿속에 엉망으로 엉킨 이야기의 실타래를 잘 풀어 정리해서 옮겨야 한다.
그동안의 노하우에 비춰 보자면 착한 고등학생 혹은,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의 여린 마음만으로는 절대 뽑히지 않는다. 조미료를 살짝 뿌리되 너무 티 나지 않아야 한다. 마치 그 조미료도 나의 일부인 것처럼 흡수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 혀가 MSG와 하나인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많아도 다 하면 안 된다. 그 이야기를 다 쓰자면 글씨가 깨알 같아져 읽기가 불편하다. 그렇다고 요점만 적으면 성의 없어 보이기 때문에 적당한 글자 크기에 사연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수없이 고치는 사연은 마지막까지 마음에 들키란 쉽지 않다.
사연이 완성되었다고 끝이 아니다. 수많은 엽서 중에 일단 눈에 먼저 띄는 것이 중요하다.
쏟아지는 활자에 묻혀 지칠 작가님이, 핵심만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중간에 꼭 필요한 목적어들은 다시 색깔 펜으로 적고, 글자가 가려지지 않게 그보다 연한 색연필로 친절하게 한 번 더 칠해준다.
구구절절 가야 하는 절박함은 엽서 앞면 테두리로 장식했다. 색색의 야광 펜을 교차로 써서 깨알만 한 글씨로 정성을 다해 기록했다. 예쁘게 눈에 띄라고 두른 글씨지만, 한 글자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것까지 분명 읽지 않겠지만, 그 또한 사연의 일부로 적어 연장선을 만들었다.
'난 이토록 노력했으니 제발 뽑아 주세요.'란 암묵적인 메시지가 엽서 구석구선에서 풍기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머리와 손에 의해 알록달록 색깔만으로도 외면할 수 없는 화려한 엽서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