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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n 23. 2023

마음 던지기.

우리의 학창 시절은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일찍 학교를 마치면 편의점에 들러 라면을 사서, 지금은 매정한 콘크리트가 덮어버린 도랑둑에 앉아 먹곤 했다. 여윳돈이 있는 날이면 라면에 햄을 넣기도 하고, 단무지를 곁들이는 호사를 누렸다.  


그때 우리가 채운 건 허기가 아니라 추억이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스물을 맞이하자 약속한 열아홉 12월의 마지막 날.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엎어져 잠들어버렸다. 스물의 처음 해를 보지 못한 서운함보다, 나의 앞날에 펼쳐질 음주문화를 걱정하던 진정한 친구들이었다. 그 덕에 나의 이십 대는 차마 잊히지 않는 많은 술을 쌓았다.  


나는 서울로 너는 창원으로 떠나고 남은 친구가 고향을 지켰다. 그리고 이십여 년을 돌아 우린 다시 진주에서 만났다. 이젠 손에 쥔 돈을 신경 쓰지 않고 입에 맞는 컵라면을 골라 먹을 수 있지만, 각자의 길을 걷느라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 같이 여행을 갔던 곳은 바다였다. 어린 나이에 사는 것이 팍팍했는지 부산 밤바다 앞에 선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이까짓 여유가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가자는 말만 몇 번의 해를 넘겼는지 모른다. 금방 달려올 수 있고 그리도 좋았던 것을.  


그날 우리는 서로의 가슴속에 꽉 차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왔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바닷속으로, 가슴속 무거움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남기고 던져버렸다.


자주 가자 약속했다. 지켜내기 어려운 약속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우리는 그 약속의 말들이 좋아서 한 번 두 번, 수도 없이 했다.


약속이 잊힐 때쯤 두 번째 여행은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날이 너무 화창하여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셋이 함께였기에 좋았다. 의미가 있는 싸구려 반지를 맞추고, 열심히 밥 하느라 지친 두 친구의 손을 쉬라고, 고급스러운 한정식이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 앞에서 열아홉 살 컵라면과는 다른 호사를 누렸다.  


제주도 바닷가에 선 우린 다시 한번 마음의 무게를 덜어 냈다. 삼일의 시간은 턱없이 짧았고, 돌아오는 하늘은 기약 없이 높았다. 그렇게 우리의 삼십 대도 흘러갔다.


 

도로 너머로 간질거리게 보이는 바다만큼 무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던 삶이, 무게를 조금 덜었다 싶은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파도는 거칠다. 묵직하게 밀어내는 말들의 의미를 알기에 잔잔하게 집어삼킨다.


서로의 배려가 무관심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 무관심마저 우리만의 배려가 아니던가.


늦게 도착한 포항의 바닷가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우뚝 선 상생의 손이 다부지게 버티며, 오는 이를 반기고 가는 이를 배웅하고 있었다.

길고 긴 수많은 밤 외롭지 말라고 바다엔 오른손, 육지엔 왼손을 마주 보게 한 것일까.

화해와 화합의 뜻을 쥐고 있다는 양손을 번갈아  보며 나도 마음속으로 힙하게 ‘peace’ 외쳐봤다. 포항의 밤바다가 서름하게 보내는 수더분한 바람에 잠시 몸을 맡기고,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바다를 보며 소리를 지르던 이십 대가 아니다. 마냥 아파서 속상해하던 삼십 대도 아니다. 사십 줄에 선 우린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조금은 여유로워야 하고, 가끔은 냉정해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쉽게 흔들려서도 안 되고, 그만큼 책임감은 강해져야 한다. 도전은 쉽지 않고, 지금을 지켜 내기는 더 어렵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다 상생의 손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돌아섰다. 이번에도 우린 포항 밤바다에 담아두지 못하는 마음을 띄워 보냈다.


여기저기 흩뿌리듯 던진 우리의 마음을 바다가 잘 다독여 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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