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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n 23. 2023

두 여인과 세 여자.

2012년 6월로 들어서는 햇살이 제법 뜨겁다. 늘어선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이 없었다면, 절정으로 치닫는 강렬함을 달래는 바람이 살랑거리지 않았다면, 여유로운 걸음걸이는 상상도 못 하는 초여름의 뜨거움이 눈부시다.


앞서 나란히 맞춰 걷는 느린 걸음에 속도를 맞춘 여섯 개의 발이 가볍다.


살아온 세월만큼 굽어버린 어깨와, 힘겨움의 흔적을 굳이 남겨야 하는 의무감이라도 있는 듯 자리 잡은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비춰 반짝거린다. 두 여인이 가끔씩 멈추는 걸음에 묻어나는 웃음소리가 뒤따르는 세 여자의 걸음도 같이 멈추게 한다.

 

 

기운 빠지고 지치는 여름이 오기 전, 뜨끈한 삼계탕으로 미리 체력 보충을 하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금호 못 주변을 산책하며 천천히 소화를 시키고, 뱃속을 다시 달콤함으로 채우기 위해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무릇 사람이란, 채우고 비우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던가.


이렇듯 채움과 비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소소함이 행복하기 그지없는 날, 우리들의 얼굴엔 즐거워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뿌듯함과 많이 늙어버려 줄어든 세월을 보는 아련함이 번갈아 겹친다.

 

 

“언제 어머니들 모시고 밥 한번 먹자.”


내가 진주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친구가 간간이 했던 말을, 뭐가 그리 바쁘고 어려운 일이라고 이제 지켰다. 비싼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화려한 장소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어머니 두 분은 딸과 딸의 친구들이 대접하는 소소한 점심에 기분이 마냥 좋은지, 오래된 친구처럼 담소를 나누며 마냥 즐거워하신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이 집 저 집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도 새우고, 밥도 얻어먹고 다녔다. 이제 고등학교 딸을 둔 그 시절 당신들의 나이가 된 것이 마냥 신기하고 대견한지 기분 좋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진작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마련할걸. 약간 늦은 후회가 미지근한 바람에 실려 얼굴을 쓸고 간다.

 

 

이 자리를 먼저 제안한 친구의 어머니는 정작 자리에 없는 것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챙기는 친구에게 그 마음을 비추는 것이 오히려 더 미안해지기에. 정작 불편한 자리는 권하지도, 나서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는 우리가 아니던가.

먼저 말을 꺼내고 이 자리를 만들어준 친구에게 머쓱해하는 딸들을 대신해, 엄마가 한없이 고마움을 전한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마련해 준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각자 원했던 음료를 앞에 두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로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나의 엄마고, 들어주며 맞장구를 치는 것은 친구의 어머니다.

그때의 이야기에 웃어주는 것은 우리 세 딸들의 몫이다. 그리고 간혹 흥분해서 열정이 가득 담긴 엄마가 중간에 다른 길로 흘러가지 않게 끊어주는 것이 남모르게 주어진 나의 또 다른 임무이다.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고 있노라니 내가 참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반면 차분하고 조심성 많으시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는 친구의 어머니를 친구가 똑 닮았다. 두 쌍의 데칼코마니 사이에 앉아 있는 다른 친구도 이상하게 이쪽저쪽 반반씩 가져가 닮아 있는 것만 같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보일 것이다. 비슷한 키의 두 여인은 자매로 보일 것이고, 닮은 듯 닮지 않은 세 여자는 사촌쯤으로 사이가 정리되지 않을까. 살아온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세 여자는 분명 어딘가 닮은 곳이 있을 테니 말이다.

 

 

바람이 점점 덥덥해지고, 조금씩 뜨거워지는 햇살에 인상이 찌푸려지기 전에 우린 자리를 정리했다.

이렇게 시작을 하였으니 이제 앞으로 자주 어머니들을 모시고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지는 우리들에게, 어머니들께 다음은 딸들에게 대접한다는 다짐을 받고 기분 좋은 초여름의 나들이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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