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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복희 Jul 18. 2024

비 오는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빨간 빈대떡



문방구집


비가 억수같이 매일 쏟아지는 꿉꿉한 장마철이면 동생들과 나는 영락없이 집에만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비닐로 천막을 만들어서 문방구 장사를 하고 있던 우리 집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었으니까 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억지스럽긴 하다. 그냥 문방구집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사방으로 문구류들이 진열되어 있고 그 가운데 공간에서 우리 다섯 식구가 살아야 했다. 비닐집은 여름이 제일 고욕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격이니 낮 동안 뜨거운 열을 머금은 문방구집은 밤에도 숨통이 막힌다. 이러니 며칠 동안 삼 남매가 문방구집 밖을 못 나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인가. 다행히 그나마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니 두 살, 네 살  터울인 동생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못 나가서 괴로운 거다.


문방구집이 영 불편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은 창밖으로 즐기는 비를 우리는 발 앞에서 실물로 물이 튀는 4D로 비 감성을 즐겼다. 비닐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입체적인 소리와 영화관에서만 들을 법한 짱짱한 번개 스테레오, 빗방울들이 만들어낸 바닥구멍들을 보면 그나마 지루한 이 시간들이 잠시 잊어진다.  



빨간 빈대떡   


이런 날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먹음직스러운 빨간 빈대떡을 담아 오신다. 항상 그랬기 때문에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이게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졌다. 문방구집에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데 도대체 이 빈대떡이 어디서 온 거지? 그리고 비 오는 날에만 빨간 빈대떡을 가지고 오셨다. 빈대떡이 빨간 것도 다시 생각하니 신기하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내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요리한 흔적이 없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순식간에 내 궁금증은 태산이 되었다. 빈대떡에 젓가락도 안 간다. 

도저히 못 참고 물어봤다.

 “엄마, 이 빨간색 빈대떡이 어디서 온 거야?” 

엄마는 건조하게 되받아치신다.

 “비 오는 날에는 하늘에서 빨간 빈대떡이 떨어져. 그걸 담아 온 거야”

나는 엄마의 간결하고 명확한 답변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관찰이 정확히 맞았다는 희열과 빈대떡의 출처까지 알게 되어 꽉 막힌 답답함이 해소됐다.

 다시 젓가락을 드는 순간 이성적인 뇌가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데 어떻게 따끈한 빈대떡이 만들어져서 떨어지지? ’

 어린 나이임에도 눈치껏 알아챘다.

 ‘내가 너무 순진하게 엄마말을 믿었구나 ‘ 이번에는 엄마 말이 거짓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한번 물어봤다. “정말이야?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진다는 게?” 

그때 바로 아빠의 능수능란한 연기력으로 나의 이성적 의심은 한순간에 불식된다.

 “신기하지? 그래서 아빠도 비 오는 날이 신기해. 하늘에서 빨간 빈대떡이 떨어지잖아.”

     

장 떡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유치원 때다. 문방구집에서 나온 이후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빨간 빈대떡 사건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학교에서 요리실습도 했었고, 과학시간에 비의 순환도 배웠는데. 심지어 엄마가 빈대떡 만드는 걸 보면서도 몰랐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미스터리하다. 

이 이야기의 진실은 우연한 날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에피소드로 일단락되었다.

중학생 때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데 빨간 빈대떡 냄새가 났었다. 

‘비 오는 날도 아닌데 왜 이 냄새가 나지?’  냄새를 따라가다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됐다. 엄마가 빨간 반죽을 프라이팬에 한 장씩 부치고 있는데 그 빨간 빈대떡이었다. 순간 모든 것이 정리가 됐다. 엄마한테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중학생인 내가 말하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창피한 말이었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누르고 조용히 동생한테 물어봤다. 

“너 빨간 빈대떡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거 거짓말인 줄 알았어?” 

동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나만 믿고 있었구나’ 

더 말하다가는 우리 집에서 바보로 낙인찍힐 거 같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빨간 빈대떡을 들고 오면서 말씀하신다.

 “아빠 장떡 드시러 오라고 해라”

나는 그 빨간 빈대떡 이름이 장떡이라는 것도 7년 만에 처음 알았다. 어차피 나의 지난 과거는 아무도 모를 테니 태연한 척 맛있게 장떡이나 즐기자 했는데 갑자기 왜 빈대떡을 장떡이라고 하는지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엄마 근데 이름이 왜 장떡이야?” 질문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듣던 동생이 세상에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를 보듯 한마디 한다.

 “고추장을 넣었으니까 장떡이지. 근데 언니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또 아차 싶었다. 그 빨간색이 고추장이었구나.     




추억하며


 비 오는 날 빈대떡을 부치면서 딸내미한테 해 주는 이야기다. 남편과 아이는 장떡을 먹지 않는다. 어떻게 빈대떡에 고추장을 넣냐며 질색 팔색을 한다. 하얀 빈대떡을 해주고 마지막 남은 반죽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넣으면 나만 먹는 장떡이 된다. 언제나도 참 먹음직스러운 요리다. 

 친정에 가면 가끔 엄마가 해 준 장떡을 먹게 된다. 간이 많이 세진걸 보니 엄마의 세월도 새삼 느껴진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무심히 흐뭇해하신다. 

 그 뜨거운 비닐하우스 어느 구석진 곳에서 엄마가 만들었던 장떡. 그래서 장떡은 나에게 엄마의 사랑이다.

 나도 우리 아이에게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요리를 추억해 주고 싶다.

우리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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