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 수박

by 김복희


여름이 되니 생각나는 과일은 역시 수박이다.

우리 집은 수박 한 통을 사면 절반은 식구들이 먹고 남은 절반은 내 차지가 된다. 그 자리에서 반통을 다 먹을 정도로 수박은 나의 최애 과일 중 하나이다. 일단 먹어야 되는 양이 많으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저녁 식사 후 거의 자기 직전까지 먹어야 다 먹어진다.

나의 미식 철학이라고 하면,

나에게 음식은 배를 채우는 끼니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요리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지 않고 그냥 뱃속으로 집어넣는 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에서야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속도를 맞춰야 하니 빨리 먹게 되지만 집에서 편하게 먹는 식사는 보통 한두 시간 정도는 걸린다.

매사에 뭐든지 느리다며 타박을 주시던 엄마이지만 먹을 때만큼은 말씀을 안 하신다.

반면 아빠는 저렇게 느리게 먹으면 나중에 시집가서 구박받는다며 먹는 내내 잔소리시다.

‘그럼 시집 안 가면 되지’

사실하고 싶은 말이지만 부녀간의 평화를 위해서 꾹 삼킨다.

그러니 저녁 식사 후 수박까지 먹는 날이면 아빠 눈치를 봐가면서 먹어야 하니 엄마는 아예

식구들과 내 자리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으신다.

아무튼 아빠의 눈치를 감내하면서까지 먹을 수밖에 없는 나의 수박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나의 왕성한 성장기 동안 먹는 양으로 치면 밭대기 하나는 먹었을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래서 지금 내 위가 이렇게 위대해진 건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차니 말이다.


한창 더웠던 여름 6학년 때 일이다.

반에서 학예회 행사 때 연극을 하게 됐는데 선생님의 지목으로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얼떨결에 대본을 쓰게 됐다. 일단 대본이 나와야 친구들이 연습을 할 수 있으니 빨리 대본이 완성돼야 한다. 그래도 맡겨진 일이니 잘해야 써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더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고뇌와 마감일의 압박감을 이겨내며 완성된 대본은 연극을 며칠 앞두고 겨우 완성이 됐다. 그런데 연습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무조건 내일까지 자기 대사 다 외워와야 돼”

친구들은 이걸 어떻게 내일까지 외워야 하냐며 여기저기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빠르게 분위기 파악을 한 친구가 센스 있게 한마디 거들어준다.

“시간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외울 수 있는 데까지 외워보자”

“그래. 하는 데까지 해 보자!”

역시 어디나 현명한 리더들이 있다.

다음날 하교시간에 연극팀 친구들이 모였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연습을 하려고 하는데 교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고작 한 시간밖에 안된다고 한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이다.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에 당장 어디 가서 연습을 해야 하나... 갑작스러운 난관에 당황하며 다들 우왕좌왕이다. 마음이 급하다. 결국 갈 데는 친구들 집 밖에 없는데 열대명이 들어갈 집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한 친구밖에 없다. 다들 말은 못 하고 머뭇하는데 한 친구가 총대를 멘다.

“지영아~ 너희 집으로 가면 어때? 너희 집 넓잖아”

“그래. 얘네 집 넓어. 연습장소로 딱인 거 같아.”

“그래 지영이 집으로 가자!”

다들 결정이 된 양 지영이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안돼. 엄마가 친구들 집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하셨어!”

너무 매몰차고 단호한 태도에 다들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이러다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그냥 선생님한테 못한다고 말씀드릴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정말 안되면 우리 집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이 많은 애들을 데리고 간다고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막막하다.

‘엄마한테 미리 얘기도 못한 상황이고 우리 집은 식당인데 괜찮을까’

지금은 찬밥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고민할 시간에 시간만 간다. 결단을 내리자.

“얘들아! 우리 집으로 가자!”

말을 뱉는 순간 후회가 몰려왔다. 친구들은 나의 이런 마음도 모른 채 다들 신나 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걱정과 후회로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집에 도착하자 내가 식당으로 들어가니 친구들이 의아해한다.

“너희 집 식당이야?”

“ 일단 들어와”

친구들이 들어가니 갑자기 식당이 북적북적 어수선해졌다.

예상대로 엄마가 많이 당황해하시며 물어보신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에게 우리가 얼마나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최대한 불쌍한 모드로 아주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았다. 우리의 아우성 같은 하소연을 들으시더니 쿨하게 말씀하신다.

“그랬어? 더운데 고생 많았네 ~ 얼른 방에 들어가서 연습해”

“감사합니다!!”

이제 연습을 할 수 있게 됐다. 하나둘 방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벌써 방이 꽉 차기 시작한다. 식당에 딸려있는 우리 삼 남매만 자는 좁은 방이다. 앉을 공간이 부족하니 3층 침대에 아이들을 층마다 거의 쑤셔 넣기까지 했다. 말은 안 하지만 불편해 보이는 친구들을 보니 내 마음이 점점 불편해진다.

‘그냥 말을 꺼내지 말걸... 괜히 데리고 왔나!’

엄마도 안 되겠다 생각하셨는지 방에 들어오시더니

“방이 너무 좁지?”.

갑자기 벽 쪽에 있는 문을 열어주시는데 그 안에 꽤 넓은 사무실 같은 곳이 있었다. 나는 그 문을 매일 보는데도 방옆에 그런 공간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이건 마치 해리포터의 비밀의 방이다.

문만 열었는데도 공기가 달라졌다. 우리는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연습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만의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들이 눈 녹듯 녹아내리니 마음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각자 외워온 대사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다들 초집중상태다. 일사천리로 아주 스피드 하게 진행이 됐다. 궁지에 몰리면 나오는 초인적인 힘 같은 건가. 다들 프로 연기자들 같다. 처음 하는 거치곤 합이 너무 잘 맞는다. 우리는 서로 너무 잘한다며 격려와 칭찬의 말로 훈훈한 연습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가 노크를 하시더니 문을 열어달라고 하신다. 갑자기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데 무슨 일인가 했다. 이게 웬일인가. 문 앞으로 가니 엄마가 큰 오봉 두 개에 수박을 가득 담아 오신 것이다. (식당에서 배달 가야 되는 음식을 받치는 큰 쟁반. 어른들이 예전에 쓰시던 일본말로 오봉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친구들도 나만큼 먹는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다들 얼마나 덥고 목이 말랐는지 너무나 필요한 타이밍에 수박을 먹게 됐으니 반가움의 환호성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수박을 집어 들고 입속으로 집어넣기 바빴다. 오늘 우리의 하루를 위로하고 격려라도 해 주는 듯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의 맛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그 많은 수박을 다 먹어버렸다.

그렇게 행복한 간식타임과 함께 드디어 첫 연습을 마쳤다. 시작 전부터 너무 막막하고 다사다난했던 우리 연극팀은 내일이라도 당장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된 양 자신감과 사기가 오를 데로 올랐다.


다음날 하교시간이 되자 연극팀 친구들은 다시 모이게 됐다. 나는 당연히 학교에서 연습을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친구들은 우리 집으로 가자는 것이다.

“너네 집이 연습하기 너무 좋던데! 엄마가 간식도 주시잖아~”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다들 우리 집을 향하고 있었다. 난감하다. 어제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갑자기 닥친 일이지만 오늘은 충분히 학교에서 연습할 수 있는데 굳이 왜...

우리 집으로 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거절도 못하겠다.

가는 내내 엄마한테 뭐라고 말을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식당일 바쁘고 복잡한데 어제처럼 또 무리들이 들어가면 오늘은 화 내실지도 몰라.’

‘오늘도 장소가 없어서 왔다고 핑계를 대야 되나.. '

벌써 집 앞이다. 이젠 선택지가 없다. 당당하게 허락을 받고 친구들을 들여보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먼저 들어가서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엄마 어제 그 친구들이 또 연습하러 왔는데 들어와도 돼요?”

“뭐? 몇 명인데?”

“어제 그대로 왔어요”

불편한 엄마의 표정을 보고 안 되겠다 싶었다. 큰일이다. 다시 학교로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더운데 빨리 들어오라고 해. 얼른 수박 사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엄마는 갑자기 온 친구들한테 대접해 줄 간식이 없다며 난감해하신다. 사실은 어제도 시장에서 급하게 사온 미지근한 수박을 큰 대야에 얼음을 넣고 시원하게 내온 수박이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 한창 연습 중에 엄마가 시원한 수박에 따끈한 찐빵까지 내 오셨다. 오늘은 친구들이 더 큰 환호성으로 신나 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우렁찬 친구들의 인사에 엄마가 흐뭇해하신다. 더운 여름인데 급한 마음에 서둘러서 시장에 갔다 오셨겠다 싶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비친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아이들은 순식간에 그 어마어마한 간식을 다 해치웠다. 전날의 사기가 이어져 친구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제 대본 없이도 대사를 주고받을 정도가 됐다. 겨우 이틀 연습했는데 이 정도라니.

그렇게 두 번째 연습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최종 연습만이 남았다.


친구들이 다 가고 엄마가 물어보신다.

“내일도 친구들 오니?”

“아니요. 내일은 최종 연습이라 무조건 학교에서 해야 돼요”

엄마는 이제 마음이 놓이신 듯했다.

두 번이나 너무 갑작스러운 친구들의 방문이 당황스러우셨지만 거하게 대접을 해주시니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친구들에게는 따뜻하고 자상한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거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마지막 연습날.

우리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에 남아 마지막 연습을 준비했다. 각자 준비한 의상과 소품들을 꺼내고 동선까지 맞춰가며 몇 번이고 연습을 이어나갔다. 마지막 리허설까지 다 마치고 나니 학교 수위 아저씨가 문 닫을 시간이라면서 나가라고 하신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내일의 성공적인 공연을 기대하며 헤어졌다.

드디어 학예회 날.

우리의 피땀이 헛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는데 이렇게 떨릴 수가 없다. 다른 팀들이 하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마지막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다른 친구들도 기대하는 분위기다. 복도에서 마지막 의상과 소품을 체크하고 드디어 연극이 시작됐다. 혹시 친구들이 대사를 까먹을 데를 대비해 나는 대본을 들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시작부터 친구들도 너무 긴장을 했는지 연습할 때의 프로들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국어책을 읽듯 대사를 친다.

‘그래 대사라도 안 까먹어서 다행이다.’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순서에도 없는 대사가 튀어나온다. 그때부터 우리의 연극은 길을 잃기 시작했다. 순서가 안 맞기 시작하니 다음에 나와야 될 대사도 없고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뜬금없이 마지막에 나와야 되는 친구가 대사를 치고 나온다.

‘망했다!’

복도에서 아직 등장도 안 한 친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삼일동안 준비한 건 역시 무리였지.

그래 이 정도도 대단한 거지’

나는 더 이상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우리의 연극은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연극은 국어책 읽는 연기와 어색한 분위기로 대사가 이어졌고 마지막에 나와야 되는 친구가 다시 한번 나와 똑같은 대사를 하는 바람에 반 친구들이 한바탕 웃으면서 연극은 끝났다.

우리는 끝나자마자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 잘했다며 서로를 토닥이고 있었다. 살짝 울컥하는 마음, 아쉬움과 속상함,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 짧은 삼일이 찰나에 스쳤다.

친구들의 표정에서 같은 마음이 느껴졌다.


학예회를 마치고 엄마가 잘하고 왔는지 물어보신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처음 꼬이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마지막 한바탕 웃었던 이야기까지 한참 동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내심 아쉬운 마음이 남았는지 다 털어내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졌다. 숨도 안 쉬고 말했더니 갈증이 몰려온다.

엄마는 조용히 수박을 내 오시며 말씀하신다.


“고생했네. 자 더우니까 수박 먹고 힘내 ~”





지금처럼 에어컨 바람 씌가며 시원하게 먹는 수박이랑 어릴 적 땀 흘리며 먹었던 수박 맛이 다르긴 하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찾은 맛집을 갔는데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그 말이 이제는 공감이 된다. 나이가 드니 입맛이 바뀌어서 그런 거지 했는데 나도 나이가 들어보니 알아진 것들이 있다.

그 사람들, 그 장소, 그 이야기가 기억하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예전의 맛이 그런 거겠다.


연극이 폭망한 그 해 여름.

그 식당 좁은 쪽방에서 친구들과 땀 흘리며 먹었던, 엄마가 오봉에 담아 오신 그 수박...

엄마의 오봉 수박.

그 맛이 유난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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