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 험난하고 서글픈 경제적 위기를 빗겨가지는 못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는 사립대 삼분의 일 정도의 학비로 다닐 수 있었던 국립대를 가게 됐지만 한 학기 학비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다. 수능을 마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학비는 부모님이 판 폐물들로 급한 불은 껐지만 당장 기숙사비와 생활비, 교통비, 교재값 등의 비용까지 생각하면 신체 건강한 내가 손을 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학기 중에는 과외와 팬시점 알바, 식당 서빙알바로 생활비를 메꾸고 방학 중에는 전구 공장에서 두 달 일하면 한 학기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나오고 3학년이 되던 해 나아지지 않았던 형편에 바로 밑 여동생은 가고 싶은 사립대를 포기하고 나를 따라 지방 국립대로 오게 되었다. 다행히 장학생으로 입학을 해 바로 기숙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단 자취보다는 비용 부담이 덜하니 일 년은 한시름 놨다.
나는 기숙사에 떨어져 자취방을 알아봐야 했다.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학교에서 너무 멀어져 왔다 갔다 교통비가 매일 들어가니 부담이 되고 학교 근처면 당연히 집세가 비싸지니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뭐든지 발품을 팔아야 좋은 집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집 한집 들어가서 일일이 주인집에 물어가봐며 적당한 집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수확 없이 돌아다니다가 한 아줌마가 찾고 있는 적당한 집이 있다며 소개를 해 주셨다. 좀 멀긴 하지만 걸어 다닐 정도 거리의 집인데 저렴하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아 망설일 틈이 없었다. 집주인아저씨의 안내로 집을 보러 가는데 자취한 친구들이 말했던 벌집이었다.
벌집은 화장실과 샤워실, 주방을 공용으로 쓰고, 마주 보는 방이 대여섯 개씩 붙어 있는 집이다. 모양이 꼭 벌집 같다고 해서 우리끼리 부르는 별칭이다. 저렴한 방이고 버스 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이만하면 다행이다.
친절하게 집을 안내해 주시던 자상한 주인집 아저씨는 집세를 낸 이후 바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짐을 옮기고 있는데 취사를 하다 화재가 날 수 있다며 주방은 사용금지라고 하신다. 첫날부터 너무 황당하다. 하지만 누구 하나라도 옳은 소리를 하면 아저씨는 그 방세를 내고 무슨 호사를 바라냐며 나가라고 하신다. 작년에 한 남학생이 불합리하다며 아저씨와 싸우다 못 참고 나갔는데 방세도 못 받고 나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약한 주인아저씨 심보를 보니 미리 내는 일 년 치 방세를 내줄리 없다. 부동산 복비도 아까워 몇 날 며칠 발품 팔아 겨우 찾아 들어온 집인데 하필 야박한 주인을 만나니 서글프다.
어쩐지 방이 너무 저렴하다 했다. 부모님이 보시면 노발대발하시면서 당장 나오라고 하실 텐데 차마 말을 못 하겠다. 안 그러면 더 비싼 방을 찾아봐야 되는데 더 이상의 짐은 지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일 년만 잘 버티고 나가자라는 마음으로 나의 자취생활은 시작됐다. 마침 같이 기숙사에서 나온 수학교육과 친구와 같은 방 룸메이트가 됐다. 그럼 방세가 반으로 주니 훨씬 부담이 덜하다.
아무튼 주방사용이 안되니 방에서 해결할 수 있는 취사는 전기밥솥뿐이다. 다행히 공용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어 각자 반찬을 보관할 수 있었다.
룸메이트와 나는 같이 쌀을 사고 각자 가지고 온 반찬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 서로 시간표가 다르니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할 때는 엄마가 보내주신 무말랭이 무침이랑 사놓은 김으로 한 끼를 때운다. 그런데 며칠도 안돼서 그 많던 반찬이 금방금방 없어진다. 공용으로 쓰는 냉장고이니 각자 반찬통에 이름을 붙여 놓는데 설마 다른 방 친구들이 먹는 건가. 룸메이트랑 어제저녁까지 먹었을 때는 분명히 며칠 먹을 수 있는 양이었는데... 룸메이트한테 사정을 얘기하니 상관없다며 혼자 밥 먹을 때는 자기 반찬을 꺼내먹으라고 한다. 너무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도대체 이 의심스러운 상황이 해결이 안 되니 답답했다.
그렇게 주말까지 친구 반찬으로 겨우겨우 끼니를 때우고 그다음 주.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친구한테 고맙다며 같이 먹으라고 콩자반과 무말랭이 반찬을 푸짐하고 넉넉하게 싸 주셨다. 그런데 이번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반찬이 금세 바닥이 났다. 너무 화가 났다.
엄마가 파출일 해 가며 만들어주신 반찬을 감히 누가!
이 자취집에 반찬도둑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필코 찾아내야겠다는 일념에 점심시간만 되면 자취방 주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방 친구들이 냉장고문이라도 열면 멀리서 힐끔힐끔 지켜보는데 아무도 내 반찬통에 손을 안 댄다. 미스터리다. 유치하지만 내 식생활이 걸린 문제니 해결을 봐야 한다. 며칠 동안의 잠복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는 며칠 사이 내 반찬통에는 콩자반 몇 알, 무말랭이 몇 가닥만 남아있었다.
마침 여동생이 자취방에 놀러 와서 답답하고 억울한 그간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그때.
책상 쪽을 보고 있던 동생이 한마디 한다.
“스팸을 왜 책꽂이에 꽂아놔?”
“무슨 스팸?”
동생이 가리키는 곳을 보는데 룸메이트 책상에 스팸이 책들 사이에 끼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추참치부터 스팸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찰나 그간 룸메이트의 이상한 행동들이 스쳤다. 최근에 같이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고 냉장고에는 룸메이트 반찬통이 없다. 내가 찾던 반찬 도둑이 설마 내 룸메이트? 반찬이 없으면 말하고 먹으면 되는데 그게 몰래 먹을 일인가... 그리고 내가 반찬도둑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아닐 거야. 그런데 내 짐작이 맞으면 어떡하지... 괜히 들춰내서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무마하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를 대비해 현명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괜히 엉뚱한 사람을 도둑으로 모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되니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해야 한다. 룸메이트가 집에서 점심 먹는 시간 동생이 모른척하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동생은 나를 찾아오는 척하며 말을 건넨다.
“언니, 우리 언니 집에 아직 안 왔어요? 아까 수업 없다고 했는데...”
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 타이밍이다.
먹고 있는 반찬을 눈치채지 못하게 스캔한 동생은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밖으로 나왔다.
동생을 보자마자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점심 먹고 있지?
뭐 먹는지 봤어?
아니지?”
말하기도 전에 이미 동생의 표정에서 상황 파악이 됐다. 처음에는 배신감에 화도 났다. 옆에서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먹는 걸로 따지려니 속 좁은 사람 같고 생각할수록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슨 사정인가 싶다.
벌집에 자취하는 친구들은 다 제각각 사연들이 있다. 각자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불편함을 감수하고 들어온 집이다. 그나마 이 시국에 학교라도 다닐 수 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룸메이트의 막연한 사연들이 그려졌다.
뭔가 녹녹지 않은 사정이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그냥 이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동생이 제안을 한다.
“그냥 내가 기숙사 식당에서 반찬 좀 싸 올게. 어때?”
“싸 오면 안 되잖아.”
“그냥 내가 덜 먹고 남은 거 싸 오면 돼!
“엄마가 싸주는 반찬을 그 언니하고 나눠먹기에는 양이 모자라잖아”
다음날부터 동생은 점심때만 되면 도시락통에 반찬을 담아 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룸메이트랑 같이 밥 먹을 일은 없고 내 반찬은 이미 동이 났고, 동생의 수고가 만만치 않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말이 쉽지 기숙사 식당에서 반찬을 담아 오는 게여간 보통일이 일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담아와야 하니 눈치껏 빠릿빠릿해야 한다. 그렇게 동생의 기숙사 도시락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나의 자취방으로 배달이 됐다.
반찬통이 작아 더 담으려니 두세 가지 반찬들이 꼬깃꼬깃 눌려있다. 특식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동생은 흥분하면서 반찬통을 열어낸다.
“오늘은 더 먹고 싶었는데 언니 주려고 많이 싸왔어. 먹어봐 맛있어~”
매일 바뀌는 여러 가지 반찬에 맛까지 좋으니, 이제는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어디 가고 매일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그렇게 한 학기를 동생의 기숙사 반찬으로 잘 버텨냈다.
룸메이트는 내가 더 이상 집에서 반찬을 안 가지고 오니 어느 순간 알아챈 눈치다. 아마 참치캔과 스팸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거다. 푸짐하기만 하면 반찬을 나눠먹고 싶지만 내 코가 석자가 되니 어쩔 수 없이 인색해진다.
마음이 씁쓸하다.
대학가를 지나다 보니 동생의 기숙사 도시락이 떠오른다.
이제 와서 보니 한 끼 식사를 매일 둘이 나눠먹는 셈이었으니 동생의 희생이 정말 눈물 나다.
힘들었던 시기 옆에 있어줘 더 고맙고 소중하다.
가끔 동생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 기숙사 도시락은 아직도 마음 한편을 뭉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