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계절학기가 시작되면서 자취방 주인아저씨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다.
변두리 오래된 2층짜리 집이라 한겨울에 거센 바람이라도 불면 벽에 찬 기운이 날카롭게 스며들어온다. 낡은 집이라 웃풍이 부는 건 당연하다지만 콘크리트 바닥에 얇은 장판을 깔아놓은 방바닥은 그야말로 얼음짱 그 자체다. 바지 두 겹, 양말 두 겹, 파카까지 껴입고 전기장판을 틀어놔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도무지 잠이 안 든다. 다른 방 학생들도 같은 상황인지 다들 복도에 나와 웅성웅성이다. 아무래도 보일러가 고장인 거 같다며 남학생들이 보일러실로 갔다 오더니 기름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며칠 전에 주인아저씨가 난방비를 걷어가고 기름을 채웠다고 했는데 뭔가 이상한 낌새가 예상됐다.
자취방 학생들은 목소리 큰 남학생을 앞세워 주인아저씨한테 전화해 물어보라고 했다. 떠밀려 총대를 매긴 했지만 평소 주인아저씨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신호음이 가는 내내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저씨, 보일러가 고장 난 거 같아요. 다른 방들도 다 냉골이에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다.
“응, 내가 기름 뺐어!”
아주 차분하고 당당하시다.
“왜요?”
“갑자기 추워져서 기름이 얼어버릴까 봐 빼놨으니까 걱정하지 마”
“네?... ”
“그럼 저희가 낸 난방비는요?”
“며칠 보일러 틀었잖아. 그 돈으로 다 썼어. 바쁘니까 끊어!”
이런 이상한 논리를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싶다. 어이없고 황당해 말이 안 나온다. 모두들 집단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기만 하면 다들 다른 집으로 이사 갈 마음으로 조금만 버티자 했는데 마지막까지 가난한 학생들 등골을 빼먹다니...
이제는 다들 체념한 표정이다. 이 집에서 당장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냉동고 같은 방에서 자다간 다음날 아침 동태가 될게 뻔하다. 다행히 실내 난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있어 몇몇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됐다.
다음날 도저히 안 되겠는지 간단한 짐만 챙겨서 친구 자취방으로 잠시 거처를 옮기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직 계절학기 수업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오갈 데 없는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오늘 밤새 또 추위에 떨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다. 수업이 끝나고 오후부터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전기밥솥에 물을 부어 취사를 누른 후 따뜻한 수증기로 공기를 따뜻하게 하고, 벽에서 새들어오는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책상을 벽 쪽으로 붙여본다. 방학이라 집에 간 친구들 이불을 빌려 바닥에 두 세 겹 깔고 그 위에 전기장판을 틀었더니 방에 약간의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너무 추워서 떨었더니 몸이 나른해진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아침이 밝았다.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분노에 찬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신다.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황당한데 신발까지 신고 방에 들어오다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전기세도 조금 내면서 왜 밤새 불을 켜놓는 거야! 전기밥솥은 왜 켜놓는 거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불화통이 터지듯 화를 쏟아내는데 꼼짝없이 듣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설움들이 북받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훈계도 주의도 아니고 그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화풀이만 하다 간 거다. 너무 억울하고 속이 상해 처음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근 보일러 사건부터 방금 당한 아저씨의 만행까지 나는 낱낱이 아빠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듣고 계시던 아빠는 주인아저씨 바꾸라며 당장 자취방으로 달려올 기세였다.
마침 복도에 주인아저씨가 보여 전화를 바꿔드렸더니 예상치 못한 반전의 반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멀리서 걱정이 많으시죠. 저도 그만한 딸 키웁니다. 딸 키우는 아빠의 마음으로 잘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일러는 고장이 나서 잠시 꺼진 거라 다시 고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거짓말을 해 대는데 소름이 돋았다.
다시 전화를 바꿔주시더니 아빠는 되려 화를 내신다.
“좋은 분인데 왜 그래? 하마터면 실례할 뻔했잖아! 보일러 고장 난 건데 무슨 기름을 빼갔다는 거야!”
아저씨가 거짓말한 거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아빠는 더 이상 내 말을 들으시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내 편인줄 알았던 아빠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 이 상황이 너무 슬퍼 멈췄던 눈물이 다시 쏟아지는데 어지간히 멈추지도 않는다.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이제는 아무도 의지할 데가 없다.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다.
여기 더 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밤새 잠이 안 온다. 무조건 이 자취방에서 나가야 하는데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때 이 집을 소개해줬던 아줌마가 생각이 났다. 졸업반 학생들 있는 집은 일찌감치 임용고시가 끝나니 비어있는 방들이 있겠다 싶었다.
아줌마를 찾아가 그간의 일들을 말씀드리니 너무 미안해하신다.
“미안해 학생. 나는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어떡하누 고생 많았네.
이런 사람은 당장 경찰에 신고를 해야 되는데.
어떻게 애들한테 그럴 수가 있어!”
마음을 알아주시니 어지간히 마음이 고달팠는지 북받치는 설움이 올라오는데 쉽사리 가라앉질 않는다. 모르고 소개해 주신 아줌마를 탓할 일이 아닌데 미안해하시니 되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주머니께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는데 마침 졸업반 학생이 짐을 미리 빼가서 빈 방이 있다는 것이다.
설마 하고 왔는데 정말 빈방이 있었다. 조심스레 주머니 사정을 말씀드리니 전기세, 난방비만 내면 준비되는 데로 방세를 내도 좋다는 것이다. 이런 천사 같은 주인아주머니를 진작에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라도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드디어 한시름 놨나 싶은데 문제는 어떻게 이 집을 나와야 될지가 고민이다. 분명히 나간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사용료들을 들먹이면서 마지막까지 괴롭힐게 뻔한데... 어차피 일 년 치 방세는 미리 다 냈고 겨울 난방비도 사용은 못했지만 미리 지불했으니 사실 손해 보고 나온 셈이니 떳떳하다. 그러니 이사를 안 할 이유가 없다. 단 주인아저씨 모르게.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이사는 캄캄한 한밤중이어야 되고, 사람들이 밤에 잘 안 다니니 눈 오는 날이면 더없이 좋다. 짐은 한꺼번에 옮기면 들통이 날 수 있으니 틈나는 대로 조금씩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이사가 시작됐다. 어둑해지는 저녁이 되면 책이나 옷가지들을 가방에 가득 채우고 매일매일 옮기기 시작했다. 너무 짐이 많으면 괜히 알게 될까 많이 가지고도 못 간다. 일주일쯤 되니 자질구레한 짐들은 다 옮겨졌다.
문제는 이불하고 책상, 책상의자, 전기밥솥이다. 무겁기도 하고 덩어리도 크니 눈에 띄기 딱 좋다. 밤 12시가 되자 동생과 나는 책상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인용 책상이지만 여학생 둘이 들기에는 여간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 지체할 시간도 없고 소리도 내면 안되니 있는 힘껏 조용히 좁은 2층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함박눈까지 내려주니 더 고요하다. 벌써부터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게도 무게지만 손으로 잡을 곳도 마땅치 않고 걸으면서 책상벽이 계속 발에 부딪히니 이렇게 자세가 불편할 수가 없다. 손이 미끄러워 장갑을 끼지 못하는 맨손에는 하얗게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20분 걸어갈 거리를 한 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온몸은 땀범벅이다. 책상을 옮기자마자 다시 남은 짐을 가지러 가는데 한발한발이 천근만근이다. 이불이며 전기밥솥 그 밖에 남은 짐들을 보자기에 싸고 나오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힘이 난다.
소복이 내려있는 함박눈 밟는 소리가 유난하다.
일주일 동안의 길고 고달픈 이사가 끝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주인아주머니는 유독 매섭게 추웠던 그날 밤 뜨끈하게 방을 데워놓으셨다. 짐을 풀기도 전에 노곤해진 우리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이사 다음날 동생의 기숙사 짐까지 더해지니 우리의 새 자취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갑자기 들어와 소리 지르는 집주인도 없고 따뜻한 방에 바로 앞 주방까지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느긋하게 하나하나 짐을 풀기 시작하니 정리하는데도 며칠이 걸린다.
일주일 넘게 이삿짐 옮기고 긴장을 했는지 그때부터 동생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며칠이 지나도 좋아질 기색이 안 보인다. 약국에서 몸살 약하고 쌍화탕을 받아와 며칠을 먹이는데도 온몸은 아직 불덩이고 이제는 죽도 못 넘길 지경이 됐다. 단단히 무리가 되긴 했다. 병원을 데려가려고 해도 이 엄동설한에 괜히 나갔다가 감기까지 걸려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지만 어차피 기력이 없어 일어나지도 못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그렇게 미안하고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미음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주면 이렇게 불안하지 않은데 평소에도 편도가 안 좋은 동생은 물 한 모금만 넘겨도 목이 아파 자지러진다. 이러다간 못 먹어서 죽겠다 싶다.
아픈지 일주일이 지날 때쯤 동생은 온몸이 쪼그라들어있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늘어진 행색이다. 두통까지 심해져 꾸역꾸역 머리를 들고 앉으려고 하는데 힘이 없으니 제 머리 하나 들 힘이 없다.
가까스로 부축해 벽에 기대앉아 있는데 동생이 힘없이 말을 한다.
“나 키위 먹고 싶어.”
“뭐라고?”
“키위 한 조각만 먹어면 살 거 같아.”
너무 뜬금없었지만 먹고 싶다는 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마트로 향했다. 다행히 마트에 한 바구니씩 담아놓은 키위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 사실 가난한 자취생들이 넘볼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지갑을 열어보니 2천 원이 보인다. 천 원은 내일 계란 한 시간 타임세일할 때 사려고 남겨놓은 돈이라 천 원 밖에 못쓰는데 키위 한 바구니가 오천 원이다.
계속 키위 앞에서 쳐다만 보고 있으니 판매 아주머니가 물어보신다.
“학생 살 거야? 얼마가 필요한데?”
자취생 주머니 사정을 눈치채신 듯 필요한 질문을 다이렉트로 해 주신다.
“저 한 개만 살 수 있을까요? 제가 딱 천 원밖에 없어서요.”
키위야 돈 없으면 안 먹어도 되는 건데 염치없이 물어보는 게 이상하다 싶으셨는지,
“왜 누가 먹고 싶대?”
사정 얘기를 하는 게 오지랖이긴 하지만 먼저 물어봐 주셔서 바로 동생 얘기를 꺼냈다.
“동생이 며칠 째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는데 키위가 먹고 싶대요.
근데 천 원 밖에 없어서요. 한 개만 사면 되거든요”
무슨 신파극도 아니고 이건 누가 봐도 너무 애절하고 불쌍한 멘트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엄마 모드로 바뀌시더니,
“아이고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어차피 너무 익어서 못 팔아 천 원에 가지고 가”
키위 한 바구니를 담아 천 원짜리 라벨지를 붙여주신다.
천사 같은 집주인아줌마 이후로 두 번째로 마트에서 천사 아줌마를 만났다.
너무 감사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동생한테 빨리 키위를 맛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방에 누워있던 동생이 키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난다.
“어떻게 사 왔어? 비싸지 않아?”
“천사 같은 아줌마가 엄청 싸게 주셨어”
“다행이다.”
껍질을 까고 있는 내내 동생은 키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자 하나 먹어봐”
마치 영화 반딧불의 묘에서 오빠 세이타가 죽어가는 동생 세츠코에게 수박 한입 물어주는 장면이다.
동생 입속에 키위 한 조각이 들어가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갑자기 눈동자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그렇게 목이 아프다고 난리였는데 키위는 술술 넘어간다. 키위 한 봉지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그제야 배가 고프다며 바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일주일 동안 제대로 된 밥알이 안 들어갔으니 얼마나 허기가 졌을까.
그렇게 밥 한 끼를 헤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기운이 돌아왔다.
정말 죽다 살아났다는 표현이 딱이다.
일주일 동안 얼마나 애가 탔는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그해 우리의 험난했던 자취방 이사는 이렇게 키위 한 조각으로 마무리가 됐고,
덕분에 두 천사 같은 아줌마들을 만나 새 자취방에서의 따뜻한 겨울을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