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치트키@김복희
일 년 지날 때쯤 그럭저럭 단골손님도 생기고 우리 문방구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나는 3학년이 되었고 시골에서의 생활은 매일 주변의 재미있는 놀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중에 제일은 친구들과 개구리를 잡으러 가는 거다.
3층 침대 바로 옆에 큰 창문이 있어 친구들이 새벽에 깨우러 오면 나는 그 창문으로 나가 친구들과 개구리를 잡으러 나가곤 했다. 동생들이 깨면 꼼짝없이 같이 데리고 나가야 한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나갈 때 숨소리를 내면 안 된다. 혹시 잠시 뜨는 실눈에 얼굴이 마주칠까 최대한 몸은 구기고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창문 여는 소리다. 대충 열다간 요란한 소리에 대번에 들통이 난다. 창틀이 살짝 떠 있는 그 공간을 유지한 채 신중히 열면 성공이다. 이런 날은 럭키다.
개구리 해부
탈출에 성공한 어느 날. 날씨도 너무 화창하고 벌써부터 친구들과 나는 개구리 잡을 생각에 흥분해 있었다. 사실 개구리를 잡는 이유는 해부를 해 보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는 개구리 해부 수업이 있었다. 마치 해부학자가 된 양 우리는 진지했다.
우리 개구리 사냥팀은 논으로 밭으로 돌진한다. 각자 한두 마리씩 잡아오면 우리는 그때부터 준비해 온 장비들을 꺼낸다. 스티로폼과 핀셋, 문구용 칼, 시침핀이면 된다.
우리는 매번 해부를 하면서도 개구리에게 미안한 마음들이 있었다.
이유는 마취솜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취를 안 하면 아플 거 같은데..”
“괜찮아 소리를 안내잖아. 그럼 괜찮은 거야.”
“그런가?”
“너무 아파서 소리를 못 내는 거 일수도 있어. 밤에는 개구리울음소리 들리잖아.”
“그럼 아픈데 참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다음부터는 기절을 시키고 해부를 하자”
“그게 더 잔인하잖아”
그 와중에도 개구리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자 마지막으로 땅에 묻어줄 때는 나름대로 경건한 분위기에 정성스레 흙을 덮어준다.
그리고는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우리는 여름 내내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지나 개학을 며칠 앞두고 아빠의 너무 갑작스러운 이사통보를 받았다. 이렇게 재밌는 동네를 떠나야 하다니. 같이 개구리 잡으러 다니던 나의 베프들을 두고 가야 하다니.
‘설마 다시 비닐집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문방구 장사도 잘 되고 있는데... 왜 갑자기’
‘나만 두고 가라고 하면 안 되겠지?’
마음이 복잡하다. 어차피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니 이사를 따라가기는 해야 한다.
이사전날 시골 문방구집에서의 마지막날 밤.
아빠가 여느 때처럼 잠잘 시간을 알리며 방 불을 끄셨다. 불 꺼진 방에 다들 잠자리에 누워있는데 엄마 아빠는 식당에 가면 뭐가 먹고 싶은지 계속 물어보신다.
이사기념으로 사주 시려나보다 내심 기대하며 신나게 외친다.
“불고기! 갈비탕! 냉면! 먹고 싶어요”
그러더니 아빠가 말씀하신다.
“너희가 원하는 걸 다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지?”
“식당이요”
“우리가 내일 이사 갈 곳이 식당이야.”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그런데 아빠 말은 믿을 수가 없다.
다시 엄마에게 되물어보는데 식당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생일 때만 유일하게 외식할 수 있는 곳이 식당인데 그 식당이 우리 집이 되다니 꿈만 같았다. 갈비탕도 매일 먹을 수 있다는데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개구리 베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미련이 없다. 빨리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두 번째 이사
이사 간 곳은 아주 화려한 유흥가의 중심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새벽까지 술 먹고 싸우는 소리,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밤중이 더 요란하다. 맹자 어머니가 보면 놀랠 놀 자다. 삼 남매가 살기에 교육적으로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그 안에서 나름 식당주인 자식들의 호사를 누렸다. 언제라도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주방 할머니가 바로바로 준비해 주시니 갑부집 아들 부럽지 않다.
식당은 정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손님이 끈이질 않았다. 저녁에 회식 단체 손님이라도 와서 갑자기 상추가 바닥나면 엄마는 다급하게 나를 찾으신다.
“복희야! 상추 이천 원어치 빨리 사와! 급해!”
나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저녁시간이라 야채가게가 문을 닫을 때는 정말 난감하다. 그때부터는 근처 가게에 일일이 들러서 상추를 찾아와야 한다.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상추 얘기만 나오면 나는 일단 무조건 달린다. 상추를 사 오고 씻어내면 밥이 없다며 쌀을 씻으라고 하신다. 식당 밥통이 워낙 크니 들어가는 쌀도 양이 만만치 않다. 커다란 대야에 쌀을 덜어내면 몇 번 헹궈서는 깨끗이 잘 씻기지도 않는다. 이렇게 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식당은 항상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도 시골 문방구에서 아이들 단골손님 만들려고 애를 썼던 걸 생각하면 비교할 바가 아니다. 바쁘니 좋긴 하다.
아빠의 치트키
식당으로 이사 후 몇 개월이 흐르고 어느 겨울날.
아빠가 방에 있는 우리들을 부르시면서 큰 포대자루를 보여주신다.
“이게 뭔지 알아?”
포대자루만 봐도 벌써 흥미가 없다.
우리의 시큰둥한 표정을 눈치채시고 아빠는 바로 포대자루를 열어 보여주신다.
오 마이 갓! 어림잡아 수백 마리는 돼 보이는 개구리들이 서로 엉겨 포대자루 안에서 이리저리 점프를 하고 있었다. 경악한 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친다.
‘도대체 이 많은 개구리들을 어디다 쓸려고. 가지고 노는 건 한두 마리면 되는데...’
아빠는 우리의 놀래는 표정을 보고 더 웃으신다.
기대했던 반응인 거다.
“오늘 아빠가 맛있는 요리를 해 줄게. 잘 봐”
‘설마 개구리로 요리를 한다고? 아니겠지...’
그런데 왠지 개구리가 오늘의 식재료인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 정말로 개구리를 요리한다고 하니 괜히 구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요리는 다시 생각해도 아닌 거 같다.
아빠가 갑자기 개구리들을 뜰채로 담아 물에 풀어놓으신다. 개구리들은 서로 엉겨있던 답답한 포대자루에서 나오니 한결 편해 보였다.
‘그럼 그렇지. 아빠가 우리한테 가지고 놀라고 하신 거구나.’
안도가 되면서 동생들이랑 유유히 수영하고 있는 개구리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아빠가 갑자기 물을 따라내시더니 순식간에 옆에 달궈진 기름 냄비에 개구리들을 넣는다. 순식간의 일이라 손쓸 틈도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아빠. 너무 놀라 소리도 안 나온다.
그런데 기름에 개구리들이 들어가는데 하나같이 기지개를 켠다. 들어가는 동시에 다 같이 팔다리를 위아래로 쭉 펴는 모양이 단체로 싱크로나이즈를 하는 모습이다. 개구리를 지켜줘야 하다는 사명감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우리는 개구리가 튀겨지는 모습을 넋을 잃고 구경하고 있었다. 아빠가 다 튀겨진 개구리들을 체에 밭쳐오시는데 통닭처럼 통으로 튀긴 게 흡사하니, 이건 그냥 통개구리 튀김이다.
아빠가 먼저 튀겨진 개구리 한 마리를 잡더니 살을 발라주신다.
‘아니야. 이건 그냥 통닭 같은 거야! 괜찮을 거야!’
마인드 컨트롤을 해 보지만 유유히 수영하던 개구리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먹어볼 엄두가 안 난다.
손도 안 대고 보고만 있으니 아빠가 먼저 시범을 보이신다.
“음~ 이렇게 맛있는걸 왜 안 먹어. ”
너무 맛있게 드시는데 살짝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 아빠의 정성을 생각해서 시늉이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입 먹어보는데 그 맛이 마치 부드러운 닭다리살 같은데 딱 그 맛은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아마 개구리고기에서만 나는 맛인 거 같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개구리 요리는 그야말로 별미다. 동생들도 처음에는 징그럽다고 절레절레하더니 한입 먹어 보고는 신세계를 맛본 표정이다.
“내가 맛있다고 했잖아.”
아빠는 신이 나서 계속 살을 발라주신다.
아빠 어릴 때 먹을게 귀했던 시절 먹었던 아이들 간식이었다고 한다. 그 맛을 우리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으신 거다. 그러니 먹는 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흐뭇한가.
얼마 후 친구들에게 아빠가 만들어주신 통개구리 튀김 얘기를 해주었다.
나 딴에는 자랑삼아한 얘기였는데 친구들은 마치 나를 야만인 쳐다보듯 한다.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지만 이해는 간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아무튼 통개구리 튀김은 겨울에 우리에게만 해 주는 아빠의 치트키가 됐다.
겨울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아빠의 치트키.
얼마 전 비 오는 날 도서관 주차장에서 우연히 개구리를 보는데 딸아이가 신이 났다. 그만큼 요즘은 개구리를 보는 게 여간 어렵다. 개구리가 팔짝팔짝 뛰어갈 때마다 그 뒤를 쫓아가는 모습이 영 사랑스럽다. 그나마 산 근처인 동네에서는 이렇게나마 한두 번 보는데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실물을 구경이나 하겠나 싶다. 호기심에 개구리를 쿠팡에 검색해 봤더니 개구리 인형이랑 식용개구리가 떴다. 쿠팡에는 정말 없는 게 없다. 다시 보니 역시 먹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다.
가끔 아빠의 통개구리 튀김이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그리운 건 아빠가 해 준 요리보다 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시던 그 마음이었나 보다.
이제는 엄마가 돼 보니 그 마음이 더 알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