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메뉴

by 김복희


햄버거의 우울한 패배 이후 엄마 아빠는 또다시 신메뉴 개발에 고민이 많으시다. 뭔가 아이들을 끌만한 것이 있어야 연필하나라도 더 팔 수 있는데 신박한 아이템이 없으면 도무지 아이들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문방구는 하교시간에는 거의 분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라 신메뉴가 더더욱 절실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점점 조바심이 난다. 이러다간 조만간 다시 비닐문방구로 돌아가야 하나. 한여름이면 숨통을 쬐이는,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행여나 또 비벼락이라도 맞을까 밤잠을 설쳐야 했던 곳을 다시 갈 수는 없다.

엄마는 몇 날 며칠 주방에서 창작의 사투를 벌이신다.



나의 히어로


한날은 학교에서 끝나고 오는데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예고 없던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아이들은 각자 손에 쥐는 아무거나 머리에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내달린다. 나는 우리 집이 학교 앞 문방구이니 털어지는 비만 맞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우리 집이 문방구라 너무 좋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닌 거 같다. 빗줄기를 보니 한나절은 더 올 기세다. 집이 먼 친구들은 집으로 가려다 다들 문방구로 비를 피하러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옆집 문방구가 만원이 되니 우리 집 문방구로 아이들이 차기 시작했다. 저 비를 맞으면서 집까지 걸어가다간 가방에 책이나 공책들이 다 젖어버린다. 그 뒷감당에 나갈 엄두가 안 난다.

구석구석 들어와 있는 아이들 때문에 우리 삼 남매는 방에서 못 나올 지경이었다. 그 사이 부모님들이 한 두 분 자기 아이들을 데리러 오신다. 아이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으니 웅성웅성 대는 소리에 세찬 빗소리에 웬만큼 우렁차지 않으면 아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나마 집에 오토바이나 자전거라도 있는 집은 기대라도 하지만 그마저도 없는 집 아이들은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하나둘씩 빗속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먹구름 탓인지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어떤 아이는 계속 자리차지만 하는 게 눈치가 보이는지 불량식품 하나라도 산다.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남아 있는 아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비를 맞고 가기에는 집이 너무 멀다. 족히 한 시간은 걸어가야 하는 동네에 사는 애들이 대부분이니 난감한 상황이다.

그때 우리 문방구 앞에 큰 트럭이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장면에 모두가 어리둥절 바라보고 있는데 아빠가 수신호를 보내면서 조심스럽게 트럭을 세우신다. 아이들을 태우고 가려고 동네 아저씨께 부탁해서 트럭을 빌려오신 것이다. 아빠의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얼마나 기발하고 이타적인 발상인가.

“얘들아 지곡리까지 갈 거니까 다 타”

빗속을 뚫고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아빠는 모두의 영웅이었다.

아이들은 일단 집까지 태워준다는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옆집 문방구 아이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집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눈치 볼 일이 아니다. 조그만 아이들은 엄마가 올려주고 트럭 위에서는 아빠가 손을 잡아끌어올리면서 빼곡히 다 태웠다. 그러더니 트럭만 한 비닐을 아이들 위에 덮어준다. 예전에 비닐 문방구집에서 비벼락을 대비하기 위해 예비용으로 사뒀던 비닐을 꺼내신 거다. 크고 단단한 비닐이라 너무 요긴하다. 오늘을 위해 예비된 비닐이었다.

아빠는 고학년 남자아이들을 모서리에 앉히더니 말씀하신다.

“비가 너무 세차서 차가 천천히 달릴 거야. 지금부터 20-30분 정도 갈 거니까 너희들이 비닐을 꼭 잡고 있어야 돼. 그래야 동생들이 비를 안 맞고 갈 수 있어. 할 수 있지?”

남자아이들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표정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덮은 비닐이 날아갈까 싶어 아빠는 트럭 앞에서 비닐을 잡고 같이 가셨다.

비를 맞고 트럭을 타고 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내내 뿌듯함과 자랑스러움과 뭔지 모를 여러 가지 벅찬 감정들에 하루종일 여운이 남았다.


그날 이후 우리 문방구는 학부모들이 신뢰하는 문방구가 되어 있었다. 우리 아빠는 그 먼 빗길에 아이들을 위해 수고해 주신 고마우신 문방구집 사장님이 되신 거다. 다음날부터 꽤 많은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고맙다며 찾아오시는 학부모님들도 계셨다. 의도치 않게 따뜻한 진심이 통했나 보다.



신메뉴 개시


우리 문방구 이미지가 급상승했을 타이밍에 마침 엄마의 신메뉴가 완성이 되었다. 신메뉴까지 성공하면 이제 단골손님들까지 기대해 볼 일이었다.

엄마가 접시에 내오시는데 처음에는 무슨 음식인지 몰랐다. 분명히 떡볶이인데 색이 거무스름하다. 냄새로 짐작을 해보니 짜장면 소스다.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맛보기 전에 일단 비주얼이 비호감이다. 내심 기대하고 있는 엄마의 표정을 보는데도 차마 먹어볼 용기가 안 난다. 몇 날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며 만든 음식이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동생들은 표정관리도 안 한다.

아빠가 담담한 표정으로 먼저 시식을 해 보시더니

“괜찮은데? 맛있어”

나는 아빠가 또 연기하는가 싶은 의심에 한입 먹어본다.

그런데 맛있다. 너무 맛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딱 그 맛이다.

인고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동생들도 따라먹더니 연신 맛있다고 난리다.

드디어 우리 문방구의 신메뉴 짜장 떡볶이 시식 날.

하교시간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시식을 하게 하는데 아무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역시 비주얼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듯하다. 연신 먹어보라고 손에 쥐어주는데도 머뭇머뭇한다.

이러다간 오픈도 하기 전에 사장될 위기다.

엄마는 갑자기 떡볶이를 나에게 건네시면서 한마디 하신다.

“너 어제 맛있다고 했잖아. 많이 먹어. 얘네들은 안 먹는다네. ”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써먹는 방법이다. 엄마의 현명한 처세술이 통했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더니 지켜보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먹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맛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이라 어색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단짠단짠 한 맛.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 입소문이 났는지 짜장 떡볶이를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매운걸 못 먹는 저학년 아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신메뉴의 인기에 옆집 문방구 아줌마는 날이 섰다. 이제는 옆집 아들이 대놓고 사 먹으러 온다. 의도를 알지만 엄마는 쿨한 척 야무지게 담아주신다. 예상대로 역시나 며칠 뒤에 옆집도 짜장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다. 좋게 말해 벤치마킹이지 대놓고 표절을 하니 얄밉기도 하다.

특히 햄버거 사건 이후 엄마는 더 단단히 벼르신 듯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옆집 문방구에서 사 먹는 아이들이 다시 우리 문방구로 오기 시작했다. 비슷하게 맛은 흉내 낼지 모르지만 엄마만의 특별한 레시피를 알 길이 없으니 그 맛이 안 난다.


그렇게 짜장 떡볶이는 우리 문방구의 시그니쳐 메뉴가 되었다. 덕분에 고정손님들도 많이 생겼다. 엄마는 매일 문방구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짜장소스를 만들기 시작하신다. 힘들어도 신이 나신게 보인다. 순탄치 않았던 우리 문방구의 입성기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근래에 마트에서 짜장 떡볶이가 제품으로 나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37년 전에 우리 엄마가 만들었던 그 짜장 떡볶이를 마트에서 보게 되다니.

사실 그 시골 문방구에서 이사 오고서는 경쟁할 문방구가 없으니 굳이 팔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잊혔던 음식이었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제품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내줬다.

“엄마 우리 걸 누가 표절했어. 설마 옆집 아줌마가 한건 아니겠지?”

박장대소하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며칠 후,

“마트 온 김에 사봤어. 근데 내가 만든 거보다 그렇게 맛나진 않네”

너스레를 떠는 엄마의 메시지와 다르게 너무나 맛있게 먹는 인증샷을 보고 한참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그 시골 문방구에서 일 년을 만들었던 음식이다. 질리도록 만들었던 음식이라 진이 났을 법도 하다.

그 이후로는 엄마가 한 번도 해 준 적이 없다. 그런데 엄마가 마트에서 사 와서 드신 것이다.

그렇게 엄마에게 짜장 떡볶이는 유쾌한 추억이 됐나 보다.


오늘은 아이에게 짜장 떡볶이를 만들어 줘야겠다.

얼마나 좋아할지 그 표정이 눈에 선하니 당장 마음이 급하다.

엄마의 마음이 이랬겠다.

장사하느라 너희한테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늘 당신을 탓하는 엄마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엄마가 해준 짜장 떡볶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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