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봐야 먹을 수 있다 2

by 김복희


급한 마음에 조교님을 불러 세웠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입이 안 떨어진다.

‘그냥 눈 딱 감고 말씀드리자!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조교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무슨 일인데?”

“저요.. 제가.. 줄넘기가 힘들어서... 사실 검사가...”

다짐 다짐을 하고 겨우 내뱉은 말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줄넘기가 힘들다는 거야? ”

“네... 그게... 저... ”

“너무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줄넘기는 하다 보면 늘어. 걱정하지 말고”

“그게 아니라...”

아! 답답하다! 딱 부러지게 말 못 하는 내 성격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말 못 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다른 말만 하시니 조교님은 이미 내 의사를 알면서 모른 척하시는 거 같았다.

“더 할 얘기 없으면 먼저 갈게. 다음 시간에 보자.”


망했다.


자취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그냥 말 안 하고 안 나갈까? 그럼 소개해 준 친구한테 너무 미안한데...

조교님께 편지를 쓸까? 아니야.. 어차피 알고 계시는데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결론도 없는 고민이었는데 밤을 꼴딱 새 버렸다.


‘그래 나도 이제 어른인데 이게 뭐라고!’

다음날 아침 뜨는 해를 보면서 이미 마음은 체념이 돼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니 나도 모르게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세상 다 산 사람이다. 누가 보면 죽을병이라도 걸렸나 싶겠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몇몇 학생들이 채혈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부럽다.

채혈실로 들어가는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벌써 식은땀이 나지만 최대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태연하게 자리에 앉는다.

앉자마자 간호사님 얼굴을 보는데 너무 젊으시다. 그럼 경험이 많이 없다는 거다.

계속 혈관을 찾고 있는데 간호사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뒤에 줄 서 있는 학생들을 보니 마음이 급해지셨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일단 주삿바늘을 찌르신다.

‘오늘도 주사기 대 여섯 번은 찌르겠구나.

어차피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와 버렸다. 기도만 하고 있자.‘

불행히도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섯 번이나 주삿바늘을 넣었다 뱄다 하시더니 안절부절못하신다. 그 찌릿한 고통이 온몸을 소름 돋게 하는데 식은땀이 난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해 본다.

‘여기는 병원이 아니다. 나는 지금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 있다. 오늘 수업은 재밌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끌고 오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때 마침, 꽤 경력이 있어 보이시는 간호사분들이 이 상황을 힐끔힐끔 보시고는 잠시 멈칫하신다.

“잘 안되니? 도와줄까?”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너무 고마우신 선배 간호사님이 도움을 건네보는데 눈치 없는 신입간호사는 아무렇지 않게 호의를 거절한다.

“괜찮아요.”

다시 돌아가는 선배 간호사님의 뒷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마음속에서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다.

아프다고 얘기하면 되는데 그게 또 무슨 자존심이라고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이었다.

내가 무슨 실습대상자도 아니고 이렇게 안되면 도와달라고 해야지 무슨 배짱인지... 이제 화가 난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니 피가 마른다.

그러는 와중에 간호사는 계속 혈관을 찾아보고 있었고 그 사이 내 뒤에는 기다리는 학생들 줄이 더 늘어났다.

안 되겠는지 결국 한마디 하신다.

“그냥 손등에 할게요!”

이럴 거면 뭐 하러 주삿바늘을 그렇게 찔러댔는지 너무나 원망스럽고 미울 수가 없다. 손등은 피부가 얇아서 두꺼운 채혈바늘이 들어가면 정말 아프다. 그래도 한 번에 끝내면 그게 더 낫다. 우여곡절 끝에 채혈을 하고 나오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공짜밥 먹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 지경까지 되다니..

앞으로 이 짓을 몇 번을 더 해야 하다니...

이 사태를 어떡해야 하나...‘

얼마나 긴장하고 몸에 힘을 줬는지 나오는데 다리 힘이 풀리고 현기증까지 난다.


다음 날.

줄넘기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운동이나 하자라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른 애들도 다 나 같았을 거야’

경기나 선발전도 아닌데 나는 죽기 살기로 했다. 겨우 한 세트하고 나니 숨이 안 쉬어진다.

내 몸이 의지를 안 따라준다. 두 세트부터는 땅바닥에 본드를 발라놓은 건지 땅에서 발이 안 떨어진다.

미동도 안 하고 서 있는 나에게 조교님이 지나가시면서 한마디 하신다.

“복희야. 한 개만 더 해보자! 그럼 다음에는 두 개 더 할 수 있어! “

‘그래 안 돼도 한 개는 할 수 있지! 해 보자!’

정말 한 개만 해 보자 생각이 드니 발이 떨어진다. 한 개 뛴 게 아까워서 두 개 하게 되고 이왕 한 거 끝까지 해 보고 싶어 진다.

그날 줄넘기는 두 세트까지 이천 개를 해냈다. 나 스스로도 너무 자랑스럽고 이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끝나고 식당으로 이동하는 내내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힘들게 운동하고 와서 먹는 밥이니 안 맛있을 수가 없다. 내 몫을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공짜밥이 떳떳하다.

그렇게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쯤 속도는 느리지만 이제 친구들과 다름없이 세 세트를 해 낼 수 있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니 뿌듯하다. 줄넘기를 안 하고 가는 날은 허전하기까지 했다.


다시 피검사하는 날이 돌아왔다.

또다시 실습대상이 돼서 내 팔에 바늘을 찌르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몇 개의 플랜이 있어야 한다.

먼저 경력 있어 보이는 간호사님이 보이면 무조건 가서 부탁을 해 본다. 자존심이나 예의를 차릴 처지가 아니다. 무례하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보자.

안된다고 하면 한방에 끝낼 수 있게 손등에 채혈을 해 달라고 하면 된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덜 고통스러운 차선책이라도 있어야 마음이 놓일 거 같아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채혈실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아뿔싸 그때 그 간호사다.

그럼 바로 플랜 B다.

“저번에 채혈이 잘 안돼서 손등에 해 주셨는데 오늘도 바로 손등에 해 주세요.”

“그때 그 학생이구나. 혈관이 너무 없어서 애 먹었는데”

내 말을 듣고 얼굴을 보더니 기억이 났나 보다.

그러더니 갑자기 안쪽 방에 들어가서 다른 간호사님을 불러오신다.

딱 봐도 경력이 꽤나 있으신 듯했다.

“저번에 너무 힘들었죠. 혈관이 너무 약하시다고...”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능숙하게 여기저기 혈관을 찾으시는 모습이 역시 베테랑 느낌이다.

이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혈관을 찾으시더니 바로 주사 바늘을 꽂으신다.

괜히 경력자가 아니다.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데도 노련함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바늘이 들어가고부터 아무 움직임이 없으시다.

“아이고 혈관이 자꾸 도망가네. 다시 해볼게요.”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이제는 내 혈관이 원망스럽다. 어차피 나에게 차선책은 필요가 없었다.

안 되겠는지 두 번째 주삿바늘이 들어가고는 안에서 이리저리 바늘을 움직이시는데 머리끝까지 찌릿찌릿하다.

‘아... 결국은 이렇게 될 거였구나’

바늘이 계속 움직이는데 끝날 여지가 안 보인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나와 버렸다.

“선생님 그냥 손등에 해 주세요”

두 번째 피검사도 역시나 다사다난했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빨리 끝났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줄넘기 실험이 끝날 때까지 이후로 나는 몇 번의 피를 더 봐야 했다. 매번 채혈실을 들어갈 때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들어갔던 장면이 선하다. 그렇게 몇 번을 가도 끝까지 익숙해지거나 무뎌지지는 않았다. 워낙 혈관이 약해서 그런지 지금도 역시 채혈하는 게 제일 고욕이다.

공짜밥을 먹기 위해 시작한 줄넘기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에게 끈기와 자신감을 갖게 해 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피검사를 매번 이기고 갔던 내가 너무나 대견하다. 그 해 한 학기 동안 피를 봐야 먹을 수 있었던 공짜 저녁밥 덕분에 체중은 시작할 때보다 더 늘어있었다. 운동량이 많으니 먹는 양도 평소보다 과하긴 했다. 그래도 논문 때문에 하는 건데 기대되는 결과가 안 나온 거 같아 조교님께 살짝 죄송하긴 했다.


돌아보면 굳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지만 순수하고 숫기 없던 풋풋한 대학생이었다.

이제는 적당히 익숙해지고 새로운 것에 망설여지는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도전이었고 설레었던 그때의 내가 부럽고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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