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통 2

by 김복희

계절학기 수업이 없는 방학 때면 동생과 나는 전구공장에서 알바를 했다. 한 학기 등록금을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알바자리이다. 그렇다고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한여름에 에어컨 없는 뜨거운 기계실에 들어가 온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도 지끈지끈해진다. 발밑으로 날아오는 더운 선풍기 바람이 그나마 뜨거운 열을 식혀준다. 더위라도 먹으면 며칠은 정말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하루라도 빈자리가 생기면 바로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차고 들어오니 아파도 쉴 수가 없다. 퇴근하고 나면 과외 알바를 하러 가는데 그나마 일주일에 두 번이고 앉아서 하는 일이니 나에게 과외는 꿀알바다.


겨울에는 따뜻한 기계자리 대신 포장작업을 해야 한다. 박스 같은 종이가 있으니 전열기를 옆에 둘 수 없어 점심때쯤이면 추워서 손발이 얼어 감각이 없다. 한 번은 갑자기 온몸이 가렵고 붓기 시작해 응급실에 갔는데 온도 알레르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온도변화가 심한 곳에 가면 생기는 알레르기라 심하면 기도까지 부어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긴 하루종일 떨면서 일을 하니 없는 알레르기도 생기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주사를 맞아 금방 가라앉긴 했지만 그만둘 상황이 아니니 다음날부터는 겹겹이 옷을 껴입고 핫팩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그렇게 무사히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방학이 돌아올 때쯤 당연히 전구공장 알바를 가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먼저 들어온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어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구할 수 있는 알바자리도 없고 갑자기 막막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막내동생까지 대학에 입학해 당장 세 사람 등록금이 필요한 이 시점에 아버지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셔서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방학이 시작된 이후라 웬만한 좋은 알바자리는 다 찼고 그날그날 용역업체에 가서 당일지급을 받는 단기 알바를 해야만 했다. 일당이 세긴 하지만 용역업체 소개비가 빠지니 하루종일 일하고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하루 3만 원 정도였다. 그나마도 매일 있는 일이 아니니 등록금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오는데 뜬금없이 커다란 하드통이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모아놓고 말씀하신다.

“등록금도 있어야 되고 아빠 병원비도 나가야 돼.

그래서 도매로 하드를 살 수 있는 데를 알았어.

이제 우리 하드를 팔 거야!

주문받아서 배달까지 해 줘야 되는데 누가 배달할래? “

엄마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스러웠지만 누구도 왜 이걸 해야 되냐고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데가 아니라는 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

스쿠터로 배달을 해야 되는데 남동생은 아직 숫기가 없어서 배달은 못하겠다 하고 여동생과 엄마는 자전거 운전도 안되니 결국 배달은 내가 맡기로 했다. 틈나는 대로 아파트단지에 전단지를 돌리니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주문을 받은 날 기쁨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복권이라도 당첨된 줄 알겠다. 기쁜 마음도 잠시 처음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가는데 이렇게 두렵고 떨릴 수가 없었다.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로 가야 하는 것도 무서웠지만 하필 배달을 해야 하는 동네가 산중턱에 경사진 아파트단지였기 때문에 출발부터 걱정이 앞섰다.

“할 수 있겠어? 못하겠으면 말해. 엄마가 할게.”

자전거도 못 타는 엄마는 막상 스쿠터를 타고 배달 가는 내 모습을 보고 당신이 하겠다고 하신다.

“연습 많이 해서 괜찮아. 그리고 스쿠터 타는 거 재밌어.”

“그래. 그럼 조심해서 잘 갔다 와.”

그래도 엄마의 얼굴에는 불안과 걱정이 한가득이다.

다행히 차들이 많지 않고 한눈에도 어린 여학생이 스쿠터를 몰고 가는 폼이 엉성해 보였는지 다들 내 스쿠터를 조심스럽게 추월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차도를 지나고 멀리서 급경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조건 한 번에 가야 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경사부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잠깐이라도 멈칫하다간 하드박스를 얹은 스쿠터 무게를 못 이기고 뒤로 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파트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데 아파트입구를 바로 앞에 두고 신호등이 보인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아... 빨간불이다. 어떡하지? 멈추면 큰일인데... 제발 파란불로 바뀌어라’

태어나서 신호등 파란불을 이렇게 간절하게 바란 적이 없었다.

뒤로 밀리지 않을 최소한의 속도만 유지하면서 잠깐의 신호대기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다행히 파란불을 보고 건너갈 수 있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건너자마자 숨이 쉬어진다.

다행히 늦지 않게 배달을 하고 돌아오는 길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난이도 있는 배달을 해내서 그런지 그 이후에 배달일이 별로 힘들진 않았다. 한여름에 배달해야 하는 하드박스니 사실 속도가 생명이다. 조금이라도 녹아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안 사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제는 스쿠터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여느 날과 같이 배달을 하러 가는 중에 갑자기 뒤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빨리 배달을 해야 하니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경찰차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갑자기 내 옆으로 오는 경찰차에서 세우라는 사인을 보내온 것이다.

순간적으로 내 상황이 스피드 하게 스캔이 됐다.

‘신호를 어겼나? 헬멧을 안 써서 그런 건가? 속도가 빨랐나?’

경찰아저씨가 차에서 내리시는데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경찰아저씨의 한마디

“면허증 있으세요?”

‘면허증? 스쿠터도 면허증이 있나?’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없으시면 벌금입니다.”

“네??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하드 한 박스 팔면 겨우 2-3천 원 남는 장사인데 벌금을 내려면 몇 십 박스를 팔아야 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등록금이 필요해서 이 땡볕에 배달일을 하고 있는 학생에게 벌금을 내라니 너무 가혹하다. 벌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눌려 있던 설움들이 북받쳐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신분증 주세요”

매몰차고 차가운 태도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때부터는 내 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물어보지도 않은 내 사정을 경찰아저씨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제가 등록금을 벌어야 돼서요. 한 박스 팔면 겨우 2-3천 원 남아요. 아버지 병원비까지 벌어야 되는데 배달할 사람이 저 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그리고 면허증이 있어야 되는 건지는 몰랐어요.”

어차피 벌금 내야 되면 사정이라도 얘기를 해야 덜 억울할 거 같은 마음이었다.

경찰아저씨는 듣는 내내 처음처럼 감정 없는 표정이시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더니,

“학생 위험하니까 스쿠터는 안돼! 자전거면 몰라도... 다음부터 조심해요.”

끝까지 냉랭한 목소리로 무심히 말씀하시더니 가신다.

그제야 심장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긴장이 풀리니 마음 놓고 한참을 울어버렸다. 그 사이 땡볕에 하드박스가 녹아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빨리 배달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좀 전에 경찰아저씨 만난 건 잊어버리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배달할 집에 도착하자마자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이미 박스가 많이 젖어 있었다.

‘안 사겠다고 하면 다시 가야 되겠다.’

이미 체념이 됐다.

문을 열고 나오시는 아주머니는 이미 화가 많이 나신 상태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무슨 아이스크림을 이렇게 늦게 배달을 해요.”

“죄송합니다. 오다가 일이 생겨서 많이 늦었어요. 안 사시면 가지고 갈게요.”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니 나도 더 할 말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풀이 죽어있는 내 모습을 보시고 돈을 쥐어주시면서 퉁명하게 말씀하신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줘요.”

“네? 감사합니다.”

배달을 하고 나오는 길 뭔진 모르지만 왠지 내 마음을 알아채신 듯했다.

마음이 울컥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면허증이 없으니 스쿠터를 끌고 가야 했다. 걸어가기는 꽤 먼 길이어서 한참이 돼서야 도착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어떻게 된 일이냐며 자초지종을 물어보신다. 집에서도 어지간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나 보다.

“배달시킨 데서는 아직도 배달이 안 왔다고 계속 전화 오고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늦었어?”

엄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풍같이 감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 상황을 차마 다 말할 순 없었다.

엄마가 제일 속상해하실 거니까.

“경찰이 면허증 있어야 된대. 다행히 벌금은 안 물었는데 이제 스쿠터로는 배달이 안될 거 같아. 그래서 오는 길에 걸어온다고 늦었어.”

“별일은 없었어?”

배달시킨 아줌마를 두고 한 말이다.

“그냥 돈 주시던데?”

나는 엄마에게 돈을 건네고 무심히 아무렇지 않은 척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 이후 자전거로 배달을 이어나갔고 막바지 여름이 다가올 때는 배달이 뜸해져 초등학교 운동회에 나가서 남은 하드를 팔러 나가기도 했다. 부족한 돈은 엄마가 틈틈이 해온 파출일, 동생들의 아르바이트비로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릴 적 문방구집에서 부모님에게 아픈 기억이었던 하드통은 우리에게 힘든 상황을 잘 넘어가게 해 준 생계수단이 되어 주었다.


대학생활 중 가장 기억이 많이 나는 해였다. 형편이 많이 안 좋아 식구들 누구 하나 손을 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에게 짐을 지어주는 거 같아 미안해하지만 그래도 서로가 있어서 힘내서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묵묵히 힘든 길을 함께 걸어와 줬던 가족이 있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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