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호빵은 안 팔아요

by 김복희

임용고시를 앞두고 있던 대학 4학년.

우리 삼 남매 등록금을 충당하기는 형편이 여의치가 않아 여동생은 휴학을 하고 학원 알바를 시작했다. 남동생까지 입대를 해 준덕에 나는 좀 더 고시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졸업을 해야 하니 4학년인 내 대신 동생들이 희생을 해줬다.

그 사이 부모님은 우리 집 바로 밑에 슈퍼마켓을 인수해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매월 월세를 받으려고 세를 줬던 가게였는데 경기가 안 좋으니 월세는커녕 보증금까지 까먹는 지경이니, 다시 가게를 살려야 한다는 계획으로 어렵게 가게를 이어받으셨다.

내년에 여동생이 복학을 해야 하고 가게도 언제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올해는 무조건 임용을 합격해 조금이라도 가게에 도움이 돼야 했다. 그만큼 합격이 나에게는 너무나 절박했다.

4학년 한 달 교생실습 이후부터는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도 풀어보고 싶고 인강도 듣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으니 무식하게 외우기만 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시험 접수를 시작할 때쯤 날벼락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기도에서는 한자 시험까지 같이 본다는 것이다. 그것도 2급 한자시험 수준. 당장 한 달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전공이랑 교육학도 더 부지런히 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한자까지 해야 하다니. 그렇게 시험을 앞둔 한 달 동안 꾸역꾸역 한자공부까지 해가며 준비했다.

드디어 시험 날.

교육학과 전공시험은 무난하게 풀어나갔는데 역시나 한자 시험이 복병이었다. 아는 한자가 눈에 몇 글자 안 들어온다. 2급 한자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시험이 끝나고 시험장을 나오면서 이미 떨어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기대하고 있을 식구들에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마침 결혼을 앞둔 사촌언니가 형부 될 분과 부모님께 인사를 와 거실에는 식구들로 북적였다.

‘왜 하필 이때...’

아버지는 보자마자 시험부터 물어보신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이 됐다. 망했는데 차마 말을 못 하겠다.

“일단 풀기는 다 풀었어요. 기다려 봐야죠.”

나중에 알더라도 일단 안심이라도 시켜드려야 했다.

조용히 방에 들어가 앉아있는데 눈앞이 깜깜하다.

‘지금 형편에 재수를 할 수는 없고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손님들이 다 가고 아빠가 방에 들어오셔서 조심스레 물어보신다.

내색 안 하려고 했는데 표정을 이미 읽으신듯했다.

“복희야, 시험 안 좋았어?”

순간 눈물이 줄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 나에 대한 실망감, 실패에 대한 좌절감... 여러 가지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빠 무릎에 파묻혀 그렇게 한참을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아빠는 내가 다 울고 일어나서야 한 말씀하신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밥 먹자”

아빠의 목소리가 먹먹하다.

울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는 아빠의 마음을 이제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조금은 헤아려진다. 대신 아파주고 싶고 더 위로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니 마음만 아플 뿐이다.



얼마 후, 불합격 소식을 받고 그날부터 사립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면접을 봤는데 계속 불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이제 들어갈 자리도 없는데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학교마다 면접일이 거의 비슷해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뜬금없이 학교 과사에서 조교님한테 연락이 왔다.

“복희야! 너 혹시 사립 알아보고 있니?”

“네”

“합격한데 있어?”

“아니요...”

“그럼 혹시 멀긴 한데 기간제 자리가 하나 나와서 면접 가 볼래?”

“네? 정말요?”

“선배가 육아휴직인데 기간제 구한다고 해서 연락해 본거야.”

“무조건 가죠. 면접 언제예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다 싶었다. 이번에는 무조건 붙어야 한다.

면접 가는 길.

전철을 한번 갈아타고 부천역에서 버스 타고 한참을 들어가니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략 두 시간은 걸린 듯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직원분이 교장실로 안내해 주신다. 교장선생님과 독대하는 면접을 예상하진 못했지만 오히려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선생님은 흰 백발에 인자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셨다.

앉자마자 이력서를 보시더니 갸우뚱하신다.

“집이 굉장히 머네요”

“이러면 출퇴근이 어렵겠는데요”

다급한 마음에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마음의 소리가 나왔다.

“전혀 멀지 않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출근할 겁니다.”

못 미더우신지 다시 한마디 하신다.

“학교는 선생님이 지각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먼 곳에서 어떻게 출퇴근을 합니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절실했다.

“교장선생님 절대 지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 부분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평소 말주변도 없고 더군다나 어른 앞에서 면접을 보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내 목소리에 당당함과 패기가 느껴졌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네! 교장 선생님.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김 선생 믿어볼게요.”

나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통했다.

교장실을 나오는데 기분이 날아갈 거 같았다. 당장 집에 달려가서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출근은 늦지 않기 위해 항상 남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나를 믿고 뽑아주신 분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떳떳해지고 싶었다. 첫 월급은 출근한 지 보름정도 됐을 때다. 일한 지 보름밖에 안 됐는데 한 달 월급이 벌써 나오는 게 신기했다. 첫 월급날을 잊을 수가 없다. 현찰로 돈을 찾아서 제일 먼저 부모님께 드렸다. 엄마는 힘들게 번 돈이니 마음만 받겠다며 극구 안 받으신다. 당장 필요한 급한 돈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등록비랑 교통비를 제하고는 모두 어머님께 드렸다. 그 한해 큰돈은 아니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할 형편에서는 가계에 큰 보탬이 돼주었다.



새벽 5시 30분 정도 집에서 나와 부천역 앞에서 아침식사로 토스트를 먹고 있으면 학교로 향하는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퇴근 이후에는 바로 노량진학원으로 가 교육학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밤 10시가 넘는 시간이다. 매일의 출근 루틴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안 되니 집에 돌아올 때는 항상 허기가 진 상태다. 엄마는 내가 올 때까지 가게 문을 안 닫으신다. 그럼 가게에 잠깐이라도 앉아있다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복희야 배고프지? 뭐 먹을래?”

“아니요. 너무 늦어서요.”

“그럼 호빵이라도 먹어. 네가 좋아하는 야채호빵 있어.”

그 사이 손님들이 야채호빵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없다고 하신다. 돌아가는 손님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엄마 있는데 왜 안 팔아요?”

“그냥...”

“너 안 먹을래? 야채 호빵 좋아하잖아.”

“너무 늦었다니까...”

거의 문 닫을 때쯤 또 한 손님이 야채호빵을 찾는다.

“야채호빵 하나 주세요.”

“마지막 호빵은 안 팔아요.”

“네? 왜요?”

“너무 오래 넣어놔서 마지막게 맛이 없어서요. 내일 오셔요. 미안해요.”

손님이 나가자마자 엄마가 얼른 호빵을 꺼내시면서 말씀하신다.

“복희야. 너 오면 주려고 좀 전에 넣어 놓은 거야. 얼른 먹어. 지금이 제일 맛있을 때야.”

엄마는 처음부터 나를 위해서 남겨 놓으신 거였다. 진작부터 먹여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도 몰랐다.

동네장사 인색하면 손님 떨어진다고 깍듯하게 공을 들이시는 분이 그렇게 손님을 보내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호빵을 파는 겨울 내내 엄마는 항상 마지막 야채호빵을 남겨놓으셨다.





야채호빵은 기간제 교사 시절 재수를 한 그 해 제일 많이 먹었던 거 같다.

요즘은 호빵 종류가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난 야채호빵만 먹는다. 누구 식성을 닮았는지 아이는 야채만 보면 질색을 한다. 그 맛있는 야채호빵을 아이와 나눌 수 없다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이 호빵 이야기를 해주면 꼭 레퍼토리 같이 하는 말이 있다.

“할머니가 엄마를 진짜 사랑했나 보다. 엄마도 나 사랑해?”

그때는 몰랐다. 뭔가 큰 걸 받아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내가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걸 우리 아이는 알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늦은 퇴근길

나를 위한 엄마의 야채호빵


이제는 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딸에게 짐을 지어준거 같은 미안한 마음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엄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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