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괴물이 찾아왔다

유치원 참관 수업, 그리고 엄마의 슬럼프

by 니나맘

엄마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온다.

슬럼프는 화 괴물로 찾아와서 날 선 예민한 엄마가 되기도 하고, 비실이 괴물로 찾아와서 체력이나 건강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 때 나를 덮친 슬럼프는 죄책감 괴물이었다. 죄책감 괴물은 참 고약해서, 일단 한번 나를 물면 끝없는 고뇌와 복잡한 심정의 우물 바닥으로 끌고 내려간다.

이번에 찾아온 요놈도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발단은 유치원에서 주최한 부모 참관 수업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별로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아이의 독립적인 사회 생활 공간은 프라이버시로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둘째는 수업에서 보여질 아이의 부족한 점이 별스러운 나의 예민함을 건드리게 될까 두려워서 였다.


우리 아이가 내 눈에 잘 못하더라도 상관하지 말자, 마인드컨트롤 하고 유치원 참관 수업에 참석했는데, 웬걸 ‘못하는게’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저렇게 애쓰는데 아예 쳐다도 보지 않다니!’

‘진짜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다른 아이들은 저렇게 바쁜데?’

‘혹시 내가 잘못 키웠나?’

‘내가 너무 무심했어!’


아이가 수업 시간에 멍 때리는 모습을 보고,

문제로 인식하고,

엄마인 내 교육 문제로 비약시키는 데

정말 0.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죄책감 괴물에 잠식되었다.


딸 아이 친구들이 영어 유치원으로 진학하고, 각종 창의력 발달, 과외, 교습소, 학원 등등 다닌다고 할 때 꿋꿋이 버티던 내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후 몇 주 동안이나 나는 죄책감 괴물에 빠져 있었다.

주위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조언도 구해보았으나 주위에 아무런 학습 활동을 하지 않는 아이는 정말 우리 아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우리 아이는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몇 번 다니다가 아이가 싫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철회하려고 하였으나, 웬걸 아이가 참 즐겁게 다닌다. 학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말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균열에서 시작된 ‘엄마의 슬럼프’였다.

다른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수업이어도 우리 아이는 재미없을 수 있는 거다.

고작 참관 수업 하나 보고 와서 애 교육이 잘못된 건 아닐까 생각해 버리다니!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들은 한두 달 생일이 빠르고 느린 이유로 발달 차이가 크게 난다. 물론 생일과 무관하게 발달의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 이 시기 아이들 발달 차이는 정말 말 그대로 차이일 뿐이니까.

각자 자기만의 속도에 맞추어 열심히 크고 있다.


우리 아이는 우리 아이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고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막상 발달이 뛰어난 친구가 바로 옆에서 어떤 훌륭한 퍼포먼스(?)를 하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마음의 동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비교라 하였다.

다음 참관 수업에는 더욱 단단한 마음으로 가보려고 한다.


아니면, 그래 차라리 가지 않는 것도 괜찮겠다.




<불안>


불안한 생각은

흠뻑 물에 젖은 솜덩어리 같아서


이른 걱정에 물 한 바가지

주위 시선에 물 한 바가지


내 목구멍에 불안하게

대롱대롱 달린 불안한 마음이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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