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빨간 머리띠

by 니나맘

꽃샘 추위가 얇은 교복 외투 안으로 유난히 휘몰아치던 이른 봄이었다.

날은 춥고, 딱히 갈 곳도 없는데 발이 끈적한 본드가 묻은 마냥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내 다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동네를 걷고 또 걷고 뱅뱅 도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의 전부였던 14살 봄이었다.


부모의 이혼. 그리고 아빠와 동생과 나, 엄마 없이 세 식구만 살기로 한 그 집.


무거운 걸음을 겨우 움직여 해가 뉘엿뉘엿 다 지고 나서야 그 집의 골목길에 겨우 들어섰는데, 밖에 나와 있는 아빠의 실루엣을 보았다.

크게 혼 한번 나겠네, 생각하며 다가간 아빠의 얼굴에는 화가 아니라 걱정이 어려 있었다. 평생 처음 보는 아빠의 표정이었다. 원래 걱정도 다 화로 표현하던 경상도 사내였기에, 나에겐 세상 낯선 표정이었다.


전해들은 하교 시간이 넘어가도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아빠’와 ‘내 걱정’이라니,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우리를 키워본 경험이 없었다. 우리도 아빠의 돌봄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그나마 동생은 막내딸이라고 아빠의 사랑을 받은 편이지만, 난 돌봄은 고사하고 애정 표현 한번 받아본 기억이 없다.

우리 자매는 단 한 살 차이었는데도 아빠는 늘 나에게 집에서 맏이의 역할을, 동생에게는 막내의 역할을 강조했다. 동생이 한 번은 사고가 나서 다친 적이 있었는데,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회초리를 맞았던 정도이니 말이다.


게다가 아빠는 이혼하기 직전 몇 년 간 나의 성장 발달에 관여할 물리적 여유도 심리적 여유도 없었다.

자식의 발달을 단계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아빠는 중학교 1학년 딸은 어떻게 대하는지 감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는 시쳇말로 쫄아 있었다.

유소년 시절 동네 소문난 모범생이던 첫째 딸의 사춘기가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한 첫 날 나의 늦은 귀가에 생전 처음 본 아빠의 걱정 어린 표정은, 우리 모두에게 생소한 그 삶의 시작을 대변하고 있었다.



집 근처는 대학가라 번화했다.

아빠는 나에게 버럭 혼을 내는 대신 조용히 번화한 거리로 데려 나갔고, 좌판에서 머리띠를 사주었다.


30년이 지난 일인데도 아직 그 머리띠의 모양과 감촉이 그대로 기억난다.

두툼하고, 빨간 그 머리띠.

처음이었다. 아빠가 나에게 무언가 ‘실용적인 목적’의 물건이 아닌 것을 사준 것이 말이다.



유년 시절, 아빠는 우리 자매가 인형 놀이 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셨다. 아빠 표현에 따르자면 인형은 '여자 놀이 하는 쓸데없는 물건'이었다. 우리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아빠가 보면, 괜히 엄마에게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동생과 인형 놀이를 하다가, 아빠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엄마의 지시가 떨어지고, 박스에 집안의 흐트러진 인형들을 죄다 쑤셔 넣은 뒤 침대 밑에 숨기던 기억이 난다.



그런 아빠가 나에게 빨간 머리띠를 사주다니.

내가 먼저 필요하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 때의 아빠는 겨우 40대 초반. 딱, 지금 내 나이다.

나는 그때의 아빠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빠는 데면데면한 사춘기 딸을 겁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액세서리 선물은,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이후로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 빨간 머리띠가, 아빠가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다운 선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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