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전화가 다시 걸려온 것은, 서로 인연 끊자 하고 돌아선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싸우고, 다시 보지 말자 하고, 그리고 다시 걸려오는 아빠의 전화. 그 패턴은 거의 십 년 가까이 반복되어 왔다.
놀랍지는 않았지만, 매번 그랬듯 마음은 똑같이 쿵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이번엔 또 어떤 사소한 일로 크게 싸우게 될까, 마음을 부여잡고 회사 비상 계단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흔한 안부 한 마디 없이 한숨처럼 아빠가 말을 꺼냈다.
“암이랜다, 내가.”
간암이라고 했다. 그것도 3, 4기 정도로 꽤나 진행된 형태의.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일단 의사 선생한테 설명부터 제대로 들어야겠고, 음식도 뭐 조심해서 해 먹고 약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데, 그래서 병원에서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하는데 말이지.
요는 네가 서울서 내려와서 보호자 노릇 좀 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알코올릭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애주가였다. 그 시대 팍팍한 인생 살아가는 여느 아저씨들처럼, 삶의 근심을 풀어내는 유일한 장치가 술과 담배였다.
그렇다 해도 아빠의 술 사랑은 과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소주 두세 병, 짜고 자극적인 안주를 곁들여 마셨다.
더 큰 문제는 아빠가 간염 보균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만큼 의료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 B형 간염 보균자였던 할머니는 적절한 조치 없이 임신 및 출산을 하셨다. 아빠의 여섯 남매 모두 바이러스를 안고 세상에 나왔다.
가뜩이나 간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사람이 그렇게 술을 마시고 살았던 것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아빠의 음주가 과한 걸 다 알고 있었다. 새벽의 골목길에는 늘 아빠의 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OO야, 아빠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는데, 얌마, 나와서 아빠 부축해 가야지 어디 있냐”
쩌렁 쩌렁 외치던 아빠의 술 취한 목소리.
우린 어릴 적부터 술 심부름을 다녔다.
초등학교 갓 졸업한 아이에게 술을 팔아야 했던 동네 마트 사장님의 찌푸린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그래서 우리 자매에겐 ‘술’과 ‘아빠’는 늘 붙어 다니는 단어이고, ‘술 마신 아빠’로 합쳐지면 그 순간 스트레스가 배가 되는 단어였다.
언젠가 술이 큰 일 낼 거라는 예감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 십 수년 전, 아빠 나이 예순도 안 된 때였다.
수술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잘 마무리 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관리가 관건이었다.
동생과 나는 앞으로를 걱정했다. 무엇보다 식사가 문제였다.
의사는 수술 이후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은 물론이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모두 금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평생의 식습관이라는 것을 단번에 고치는 것이 가능할까. 곁에서 돌보아 줄 가족이 부재한데 아빠가 식단 관리는 차치하고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있을지 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아빠의 암 재발 소식을 들은 건 일상으로 돌아온지 고작 두세 달 뒤였다.
겨우 두세 달 지났을 뿐인데. 수술 후에도 살아남은 끈질긴 암세포는 보란듯이 이전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손쓸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서울의 회사에 휴직 신청을 한 뒤 본가로 내려갔다.
아빠는 빠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기꺼이 케어해 주려는 간병인은 드물었다.
겨우 구한 간병인은 곧 죽을 환자 간병을 맡아 준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무례한 말을 서슴지 않았고, 더럽고 수고스러운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때문에 아빠가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과정은 고스란히 우리 자매 몫이었다.
그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간암 병명이 주어진 지 불과 다섯 달 만에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십 여년 전 그 때, 내 마음에는 원망만 남아 있었다.
나의 청소년기, 눈만 마주쳐도 서로 싸울 거리 뿐이던 아빠와 우리 자매. 사춘기 내내 정다운 토닥거림 하나 없던 아빠.
앞으로 몇 십년의 내 인생을 아빠 없이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라는 조언이나 제대로 된 유언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아빠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왜 이렇게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것일까.
아빠가 떠나고 정리하러 간 본가의 방 구석에는 결국 빈 술병이 놓여 있었다. 나에게 죽음이 찾아오고 있는데, 옆에 아내도 자식도 없이, 나를 죽음으로 몬 원인 중 하나인 술에 의지해야 했던 아빠의 심경이 어땠을까.
노년으로 접어들던 예순의 나이. 자식 다 키워내고 평생의 경제적 부담에서 겨우 벗어나 안정을 찾던 시기였다.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그 순간이 길의 끝이었다면.
그 외로움은 아직도 감히 헤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