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by 니나맘

누가 귀신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난 자신감 있게 본 적 있다고 이야기한다.

엄마와 헤어져 아빠와 살기 시작한, 그 첫 집에서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집’은 귀신이 안 나온다 하면 되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의 집이었다. 내 나이 14살, 중학생이 되던 첫 해였으니 정말 오래 전의 일인데도, 집의 상태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아직도 ‘그 집’의 구석 구석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억을 더듬어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 집’은 독립된 하나의 집이라고 하기에 애매한데, 오래된 주택의 일부를 대충 개조해서 만든 셋방이었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표현보다 단칸방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이 집은 신기하고 심플한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방, 계단 세 칸 내려가 외부로 나가는 복도, 방과 복도 사이의 작은 공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방은 사춘기를 한창 겪는 우리 자매가 함께 썼다. 공간 분리를 위해 만들었을 미닫이를 열면 복도로 나가기 전 작은 공간이 있는데, 식탁 용도의 작은 상을 두고 그 상을 피해 이부자리를 펴고 아빠가 생활했다.

밖으로 통하는 복도는 한 사람이 지나기에도 몸을 비스듬히 옆으로 틀어야 할 정도로 비좁았다. 사실 상 외부였을 그 복도는 대충 개조하여 보일러와 싱크대를 일렬로 설치해 두었다.




화장실은 내부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주인집 마당을 통과하면, 공용으로 사용하는 작은 간이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화장실 바로 앞으로 주인집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기 때문에 용변 보기가 참 불편했다. 볼일 보다가 대문 소리가 나면 오줌보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봐야 하는 화변기 하나가 전부인 매우 좁은 공간이었다.

허리를 다 펴고 서면 더러운 화장실 천장에 머리가 닿기 때문에 늘 쪼그리고 진입해야 했다. 게다가 화변기 앞쪽 천장보다 뒤쪽이 점점 낮아지는 구조라, 엉덩이는 최대한 뒤로 빼고 앉으며 진입해야 했다.


외부 화장실이다 보니 추위와 더위가 그냥 바깥과 100% 동일한 것은 물론이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온갖 벌레들과 한 공간에서 용변을 보아야 했다. 화룡점정은, 쪼그리고 앉은 내 무방비한 엉덩이가 주르륵 줄 타고 내려오는 거미와 맞닿는 경험이었다. 그 놈의 거미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다.


아무리 쓰러져 가는 빌라라도 작은 화장실에 양변기는 이미 기본인 시대였다. 그 환경은 당시 기준으로도 충분히 비정상이었다.




여튼 여기까지만 해도 ‘그 집’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만, 놀랍게도 가장 최악은 그 변기가 아니었다. 욕실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최악이였다.


몸을 씻을 욕실이 따로 없었기에, 우리는 주방 복도 끝에 있는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여 샤워를 해결하였다.


복도 끝 그 공간은 집 안이 아니라 밖에 더 가까운 공간이었다. 겨울에는 겨울의 추위 그대로를, 여름에는 여름의 더위 그대로를 느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수도꼭지에서는 따뜻한 물이 나오질 않았다. 애초에 난방이 연결 안되어 있는 구조였는지, 아니면 난방비 아낀다고 아빠가 못 틀게 했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한겨울에 그 추운 공간에서 찬물로 샤워하던 기억은 잊지 못한다. 생리 시작하면 찬물로 아랫도리의 생리혈을 씻어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사춘기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었다.


최악인 것이 또 하나 있다. 우리가 샤워하던 그 공간은 현관문 바로 앞이었다. 주인집 마당으로 연결되는 현관문이었다.

우리 가족 중 누가 샤워하고 있으면 다른 누구는 볼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수도꼭지 앞 현관문은 뿌옇게 블러 처리된 투명한 문이었다. 옛날 주택에서 흔히 사용하던 현관문이다.

밖에서 안이 그대로 들여다 보이지는 않지만, 안쪽에 누가 지나다니면 형체와 색, 움직임이 보이는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주인집 대문에서 주인집 현관문으로 진입하는 마당의 입구에 있었다. 한마디로, 내가 발가벗고 샤워하고 있는데, 주인집 사람들이 대문을 드나들면서 옆을 스윽 본다면, 그 사람들이 안쪽 살색 덩어리 몸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내가 샤워하는 살색의 움직임이 주인집 사람들에게 감지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때문에 나와 동생에게 주인집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시간에 잘 맞추어 빠르게 샤워를 끝내는 것이 일종의 미션과 같았다. 자칫 타이밍을 잘못 맞추어서 샤워하다가 주인집 대문 열리는 소리라도 나면, 빠른 속도로 물을 끄고 최대한 쪼그리고 앉았다. 마치 그들이 보는 살색 덩어리가 살아있는 어떤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길 희망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그 집’에서 몇 년이나 버텨야 했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가위에 눌리는 날보다 눌리지 않는 날을 꼽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매일같이 가위에 시달리며 살았다. 가위에 눌렸을 때 손가락이라도 꼼지락거려서 동생에게 깨워달라고 SOS 할 수 있는 날은 lucky한 날로 여겨졌다.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그 날도 가위에 눌렸다. 동생에게 SOS를 하기 위해 온몸을 움직이려 발버둥쳤지만, 정작 움직여진 것은 딱 하나, 눈꺼풀이었다. 재수없게도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눈만 보이게 되다니. 보기 싫은 게 있어도 고개도 못 돌리고 봐야 할 판이었다.


누운 자세에서 내 고정된 시선이 닿는 곳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 모를 무엇인가가 하얀 옷을 입고 서있었다. 그리고 아주 무섭도록 천천히, 발부터 서서히 사라졌다. 처음엔 발이 사라져서 발도 없이 동동 떠있다가, 무릎까지 사라지고, 나중에는 상반신만 공중에 박혀 있더니 나중에는 얼굴까지 사라졌다.


그 날의 경험이 참 공포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모두 겪기 힘든 경험을 하는 사춘기 소녀의 정서적 불안정함이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자매는 그렇게 귀신을 보고, 찬물에 샤워하고, 거미를 엉덩이에 얹어놓고 용변을 보며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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