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이혼하기로 했어

by 니나맘

아침 햇살 밝게 내리쬐는 오전. 엄마가 웬일로 늦잠 자는 나를 기다려 함께 이부자리 뒹굴거리며 뱉은 한 마디에,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그럴 줄 알았어.


오래되어 반들거리는 장판 위에 깔린 얇은 요가 유난히 까끌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처럼.



‘이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 비해 마음은 큰 동요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어른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상황의 변화들을 충분히 알아챌 만할 눈치는 있을 나이였다.

마침 막 시작하던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감각은, 아무리 엄마 아빠가 애써도 섬세한 레이더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더욱이 난 또래 중에서도 상황 판단이 빠른 쪽이었다.



평소 아빠와 헤어지지 않는 엄마가 오히려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던 터였다.

아빠는 빚쟁이들을 피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남쪽 지방 어느 시골에 몸을 숨긴 지 몇 달이나 지난 상태였다. 우리 역시 빨간 딱지 노란 딱지 더덕더덕 붙은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외가댁에 얹혀 살고 있었다.


아 그래 생각난다.

마치 우리 가족의 번성기와,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을 암시하던 그 부내 나던 아파트.

우리 가족의 첫 자가였다.

엄마가 무척이나 신경 쓴 듯한 깨끗한 화이트 인테리어의 집. 국어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행복한 4인 가족의 행복의 상징 같았던 바로 그 집.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던 그 넓고 예쁜 집.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근근이 시간만 죽이고 지내던 그 시절, 내 부모는 인생 최대의 암흑기를 한편으로는 기듯이 한편으로는 쫓기듯이 힘겹게 버티고 있던 때였다.

그 와중에도 아빠는 자기 직원들에겐 더없이 의리 있는 사장님이었고 가족에게는 무뚝뚝하고 엄격하며 자존심 센 가장이었다.

그 어떤 여자라도 아빠의 와이프 자리를 지키고 있기 힘들 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올 것이 왔다, 라고나 할까.

뜯어 먹고 남은 작은 과자 봉지 정도의 가벼운 느낌.

적어도 내 머리는 그렇게 덤덤히 받아들였던 걸로 분명히 기억한다.


내가 받아들이는 이혼 통보의 무게에 비해, 엄마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변명과 위로를 이어 나갔다.

이혼이 필요한 이유와 상황.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

어쩌면 언젠가 (아빠가 굉장히 노력하여 변화해 준다면) 우리 네 가족이 함께할 수도 있다는 희망적 미래까지.


그렇게 긴 설명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오늘은 비가 오네 정도의, 간단한 상황 전달 수준이면 되는데, 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긴 위로가 무엇 때문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내 눈물이 베개를 흠뻑 적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눈물이 줄줄 흐르는지, 베개를 햇볕에 잠시 세워두는 정도로 마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수도꼭지 틀어 놓은 마냥 콸콸 나는 눈물이었다. (아마 이 수도꼭지 같은 눈물 때문에, 엄마와 내가 기억하는 이 날 아침의 느낌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라는 말은, 비유나 은유 따위가 아니라 실제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그다지 슬프지 않은데, 별일 아닌데 그렇게 눈물이 났다.

내 얼굴은 우는 모양새가 전혀 아니었다. 엉엉이나 꺽꺽 같은 우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표정에 가까운 내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내 마음이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눈이 가진 자체적 감정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긴긴 상황 설명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와, 신기하다, 안 슬픈데 이렇게 눈물이 날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게 30년 전 부모의 이혼 소식을 들었던 내 솔직한 감상이다.


쿨-하게 받아들여지던 나의 마음과, 그와 달리 얼굴을 타고 흐르던 과한 눈물, 닳도록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쓸어내리던 엄마의 손길, 유난히 까끌거리던 얇은 이불과 딱딱한 방바닥, 우리가 잠시 빌려 머물던 이모 방 커다란 창문으로 흘러 들어오던 아침 햇살과, 햇빛의 경계를 따라 둥둥 부유하던 먼지들.


당장 3분 전까지 들고 있던 핸드폰도 한참 찾아야 하는 나이가 된 내가,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어제 아침 일인 마냥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부모의 이혼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보다.




나는 내 자식의 행복과 올바른 성장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된 중년의 여성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느끼는 감상과, 교육에 대한 의견들을 글로 쓰고 싶었다.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기록되어진 건 그 날에 대한 기억이다. 엄마가 이혼 소식을 조심스레 전하던 그 햇살 가득한 아침에 대한 기억.


요상한 일이다.

아이에 대한 글을 쓰려 했는데 엄마와의 기억이 생각나다니.

그건 아마도, 내 딸이 나이기도 하고, 내가 내 엄마이기도 한 까닭일까? 엄마와 나와 내 딸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또한 그 안에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어느새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던 그 나이를 훌쩍 넘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딸을 가진 엄마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부모의 지난 선택을 더더욱 이해하게 되는 측면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나는 현재 행복한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고, 딸도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가 딸처럼 아이였던 시절을 기억하고 되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한편으로는 가슴 저릿한 이 글쓰기가 분명 내가 딸을 대함에 있어 무언가 중요한 조각을 제시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