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낡은 트럭과 새벽 3시의 화장실
날이 제법 쌀쌀해진다 싶으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시기가 다가온다.
또 열 여덟, 스물의 어린 친구들이 오랜 기간 준비한 모든 것을 시험장에서 와락 쏟아 내겠구나.
다들 그렇듯 수능 시험 날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때였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날 하루가 시점 별로 정확히 기억이 난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늘 그 때의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른다.
예민한 날에는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내 타고난 기질 탓이었다. 수능 시험 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보다 오히려 이른 시간부터 잠자리에 누웠으나, 일찍 자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왜 그렇게 소변이 계속 마려웠는지 모르겠다. 거의 3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가면서 내가 확인한 마지막 시간이 새벽 3시쯤 이었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아빠는, 계속 화장실 들락거리는 나에게 못마땅한 잔소리를 하셨다. ‘진짜 마지막 소변’이라 다짐하며 화장실로 향하는 그 시간에도 아빠는 한숨 섞인 야단을 치셨다.
새벽 3시.
그러는 아빠도 결국 그 시간이 되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고작 서너시간 자고 수능 치러 갔다.
수능 날이라고 아빠가 특별히 고사장까지 차를 태워 주셨다. 평소 학교 등교할 때는 잘 없던 일종의 특별 이벤트였다.
사실 나는 아빠 차 타고 등교하는 것을 좋아했다. 여느 여고가 그러하듯, 내가 다닌 고등학교 또한 비탈진 언덕 저 위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나를 데려다 주는 것을 싫어했다. 데려다 달라 요청해도 귀찮다는 듯이 거절하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귀찮았다기 보다는, 멀끔한 승용차가 아닌 지저분하고 낡은 중고 트럭으로 날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을 아빠 스스로 창피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통틀어 두 세번 정도 태워다 주었는데, 그 때마다 학교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 주었기 때문이다.
수능 날은 예외였다.
아빠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내 점심 도시락으로 죽을 끓이고 트럭을 대기시켰다. (아빠나 나나 죽 먹으면 시험 죽 쑨다 따위의 미신을 믿는 타입이 아니다.) 그리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트럭에선 아빠가 팔고 남은 야채 찌꺼기 냄새가 훅 났다.
고사장이었던 학교가 처음 가보는 곳이라 아빠가 약간 헤매었고, 그 덕에 아빠도 나도 약간 정신이 없었으며, 어쨌든 입실 마감 시간을 넉넉히 남기고 잘 도착했다.
수면 부족 때문인지, 엄청 긴장해서 그런지, 아니면 우황청심환을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고사장 입실해 자리를 찾아 앉은 뒤부터는 그냥 멍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수능은 기세로 보는 것도, 잠 잘 자고 완벽한 컨디션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습관처럼 보는 것이다.
이미 약 1년여 넘는 시간을 수능 시간표에 맞춰 일과 및 공부 해왔기에 긴장감이나 수면 부족은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매뉴얼 최적화 된 로봇처럼. 시험관이 들어오고, 주의 사항을 듣고, 시험지가 배부되고, 문제를 풀고, OMR 카드를 작성해 내는 그 모든 과정은 그냥 평소와 같았다.
점심은 혼자 조용히 먹었다. 평소라면 점심 먹고 바로 엎드려 약간의 낮잠을 잤어야 했는데, 낮잠 역시 도통 오지 않았다. 때문에 점심 먹고 소화시키려 어슬렁 거리다가, 고사장 교실 바로 옆에 있던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차가운 수화기 넘어 들려오던 엄마의 황당한 목소리.
이제와 생각하니 조금 우습다. 일생일대 시험을 치르러 간 딸이, 한창 시험 도중일 시간에 심심하다 전화를 하니 엄마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오후에 치러진 시험에서는 아찔하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탐구영역 시간에 소변이 너무 마려운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화장실을 가는 순간 해당 교시 내에 시험 교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참으려면 참겠는데, 참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참다가 교실에서 사고라도 치면 다른 수험생들에게 무슨 민폐냐 싶었다.
당황하긴 했지만, 문제를 급하게 풀면 되는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풀어 내려갔다. 이 역시 평소 훈련으로 모두 몸에 익혀져 있는 것이었다. 모르는 문제는 가볍게 패스하고, 애매한 문제는 적당히 찍어주고. 틀릴 문제는 길게 풀어도 어차피 틀릴 터였다.
그렇게 일생 일대의 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그 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 당일에 대한 감상을 떠올려보자면, TV 뉴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추운 아침 고사장 정문 앞 수많은 기도하는 학부모들, 온갖 응원 도구를 갖고 나온 후배 학생들의 빨간 코, 긴장을 무표정으로 감춘 채 고사장에 들어서던 학생들, 점심 때 화가 난 듯 거칠은 몸짓으로 가방을 챙겨 나가버리던 뒷자리 학생, 시험을 모두 마치고 터져 나오던 탄식과 한숨과 부산스러운 울음들..
시험은 내가 느끼기에 딱히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쉬운 느낌도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냥 좀 생소했다. 평소에 풀던 모의고사 문제집과도 달랐고, 전국 모의고사 느낌과도 달랐다. 뭐랄까. 처음 보는 유형들이라 생소하긴 하지만, 막상 풀어보니 또 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날 저녁 아빠에게는 친구 집에 채점하러 갔다가 늦게 귀가하겠다고 연락해놓고, 엄마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아빠는 내가 이혼한 엄마를 만나는 걸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기에, 평소 거짓말로 핑계거리를 만들어 몰래 엄마를 만나곤 했다.)
저녁을 먹으며 엄마에게 마치 무용담처럼 소감을 늘어놓았고, pc방으로 채점하러 갔다. 내 기억에, 엄마는 이날 수능 끝났으니 온전히 쉬는 게 어떻겠냐며 시험 당일에 채점하는 것을 반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내 급한 성격 때문에 엄마는 평생 처음으로 pc방에 방문했다.
채점 결과도 시험 문제 풀던 느낌과 비슷했던 것 같다. 뭔가 온전히 기뻐할 수도, 온전히 슬퍼할 수도 없는. 그 점수가 서울대 특정 계열에 부분 장학금을 받으며 갈 수 있는 성적임을 알기까지는 몇 달이나 걸렸다.
집이 심각하게 가난했기에 아빠가 일찌감치 국립대 아니면 대학 보내주기 힘들다고 엄포를 놓았던 상황이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던 나는 발칙하게 서울대를 꿈꿨지만, 막상 수능을 치르고 나니 잘 쳤다는 확신이 없었다. 혹시 아예 고졸이 될까봐 한 달 정도 불안에 떨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내 노력도 분명 중요했지만 운도 역시 좋았다.
잠은 제대로 못 잤지만 어쨌든 제 시간에 고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탐구영역 시간 소변은 마려웠지만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문제가 나왔기에 얼른 풀고 화장실을 갈 수 있었으며, 소변이 마려웠던 시점 또한 풀이 시간이 빡빡한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이 아니었다.
그날 내가 통과한 것은 어쩌면 시험이 아니라 그날 하루의 우연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참 감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