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로 보는 지침의 원인
금연, 금주, 운동, 공부.
신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늘 비슷한 대답들이 돌아온다.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작의 명분이 되지만, 그 결심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신년이 시작된 지 한 달 남짓이 지난 지금,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은 과연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누군가는 여전히 계획을 이행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미 흐지부지된 결심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개 우리는 이러한 실패를 의지력의 문제로 돌린다. 끈기가 부족해서, 마음이 약해서, 혹은 충분히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너무나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단어들이다. 오히려 반복되는 실패는 개인의 성향보다, 우리가 ‘결심’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는가 사유해 볼 필요가 있다.
칸트의 윤리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칸트에게서 의지는 단순한 욕망이나 다짐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규칙, 다시 말해 ‘자기 입법’의 능력이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신년 계획으로 흔히 등장하는 결심들은 대부분 전자에 머문다. “올해는 운동을 좀 해볼까”, “이제는 공부를 해야겠다”와 같은 선언들은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 기대나 희망에 가깝다. 이미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들 역시 단순히 만든 규칙을 가지고 구속까지 하기엔 너무하다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러한 결심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감정과 동기를 기반으로 한 다짐은 필연적으로 상황의 변화에 취약하다. 피곤한 날, 의욕이 떨어진 날, 조금은 예민한 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 날 앞에서 그 결심은 원래의 의미를 잃는다. 칸트의 기준에서 보면 이는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법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라진 것에 불과하다. 뿌리부터 잘못된 것의 인과로 이어진 결과라는 의미이다.
칸트는 행위를 평가할 때 “왜 그렇게 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행위가 어떤 준칙, 즉 반복 가능하고 보편화 가능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은 평가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규정되지 않은 다짐은 스스로를 구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심삼일의 문제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의지가 아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나를 움직이는 상태는 자율이 아니라 타율이며, 기분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행동은 결코 규칙이 될 수 없다. 칸트가 말하는 자율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법에 복종하는 상태다.
그렇기에 이 점에서 꾸준함은 더더욱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형식의 문제이며, 구조상 결함의 문제이다. 결심이 실패했다는 말은 종종 스스로를 비난하는 단어로 사용되지만, 칸트적으로 보자면 그 실패는 오히려 정확한 진단일 수 있다. 우리는 한 번도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법을 세운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신년 계획이 무너지는 풍경은 매년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은 인간의 나약함을 증명하기보다는, 결심과 의지를 혼동해 온 우리의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결심이 감정의 범주에 머무는 한, 작심삼일은 예외가 아니라 필연이다. 문제는 얼마나 강하게 다짐했느냐가 아니라, 그 다짐이 과연 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계획은 어떤 형태로 제시되어야 하는가?
칸트의 관점에서 계획이란 결심의 미사여구가 아니라, 의지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하나의 법이다. 따라서 계획은 동기를 표현하는 문장이 아니라, 행동을 구속하는 규칙의 형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흔히 세우는 계획들은 대개 감정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겠다”, “이번에는 꼭 공부하겠다”, “이제는 술을 줄여야지.” 이러한 문장들은 의욕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명령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칸트의 기준에서 이는 의지가 아니라 기대에 불과하다.
칸트적 의미에서 계획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첫째, 계획은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 특정한 시간, 상황,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다짐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둘째, 계획은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열심히’나 ‘꾸준히’와 같은 표현은 실행을 요구하지 않으며, 평가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셋째, 계획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형식을 가져야 한다. 피곤함, 귀찮음, 기분 저하와 같은 사유를 미리 면책 조항으로 포함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이러한 형식을 갖춘 계획은 성공 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의지가 규칙의 형태로 작동했는가 하는 점이다. 하루를 빠뜨렸다는 사실은 실패일 수 있지만, 애초에 아무 규칙도 없었던 상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법을 어긴 것이고, 후자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다.
결국 칸트적 계획이란 삶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하나의 자율적 존재로 대우하는 방식이다. 자신에게 법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과 상황에 자신을 맡긴다는 뜻이며, 이는 자유가 아니라 방임에 가깝다. 반대로 규칙을 세운다는 것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가정하는 행위다.
그래서 신년 계획이란 질문은 사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올해 무엇을 해볼까?’가 아닌,
‘나는 어떤 규칙 아래에서 행동하는 존재가 되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