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하여 논함

by 이정빈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보다, 늘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더 또렷해진다. 바쁠 때는 손에 잡히지 않다가, 멈춰 섰을 때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래서 시간은 흐른다기보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는 순간마다 “여기 있다”고 말하는 존재에 가깝다.


어릴 적의 시간은 이상할 만큼 느렸다. 하루는 길었고, 계절은 한참을 머물렀다. 여름방학은 하나의 생애처럼 느껴졌고, 다음 학년은 아득한 미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시간은 급격히 속도를 높였다. 달력이 넘어가는 소리가 커졌고, 작년의 일은 금세 ‘오래전’이 되었다. 같은 하루를 살고 있음에도, 체감되는 시간의 밀도는 전혀 달라진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흔히 말하듯, 시간은 객관적으로 동일하게 흐른다. 시계는 공평하고, 하루는 언제나 스물네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지루한 강의실에서의 십 분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한 십 분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결국 시간은 물리적 단위이기 이전에, 경험의 질로 측정되는 무엇이다. 우리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겪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시간에 대한 불만은 대개 삶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없다고 말할 때, 우리는 사실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고, 너무 많은 기대를 감당해야 하며, 너무 자주 미래로 호출된다. 아직 오지 않은 일들이 현재를 점령하면서, 지금이라는 순간은 점점 얇아진다. 이때 시간은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잘게 쪼개진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가장 또렷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대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라는 사실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불 꺼진 방에서 가만히 누워 있는 밤, 할 일이 모두 끝난 뒤의 공백. 그 순간들에서 우리는 비로소 시간과 단둘이 마주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간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계획표를 세우고, 효율을 따지고, 분 단위로 쪼개어 사용한다. 물론 그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은 관리의 대상이기 전에, 관계의 대상이다. 어떤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달려 있다. 같은 하루라도 무심히 흘려보낸 날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특별한 감정이 스며든 날은 오래 남는다. 기억 속에서 시간은 길이를 잃고, 색을 얻는다.


그래서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질수록, 우리는 자주 멈춰야 한다.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 안에 머물기 위해서.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일보다, 흘러가는 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더 아프다. 후회는 적어도 과거를 직시하지만, 무감각은 현재를 비워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시간을 아낀다는 말은, 무엇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후회는, 그 순간의 나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자각에 가깝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다만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시간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가. 그 질문에 성실히 답하려는 태도 자체가, 어쩌면 시간을 대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나간다. 그러나 어떤 시간은 남는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시간을 사는 우리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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