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코프의 자기 일관성 원리
시간여행을 상상해 본 적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시험 전날로 돌아가 공부를 다시 하거나, 인생 망친 결정 하나쯤 되돌리고 싶거나, 혹은 단순히 과거의 나를 한번 보고 싶은 그런 마음. 그 상상은 SF 영화에서 자주 그려지는 소재지만, 철학이나 물리학에서도 꽤 진지하게 다뤄진다.
그런 논의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일관성 원리(Self-consistency principle)’라는 거다. 물리학자 노비코프가 주장한 이 원리는 간단히 말해서, “시간여행자가 과거에 개입하더라도, 그 개입은 이미 현재에 반영돼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누가 과거에 가서 뭔가 대단한 걸 바꾸려고 해도, 실제로는 그게 이미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어떤 모순도 생기지 않고, 시간의 인과성이 유지된다는 것.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게 정말 말이 되나 싶다.
나는 이걸 비트코인 예시로 한 번 생각해 봤다.
상상해 보자. Q라는 사람이 2025년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정확히는 2013년으로 돌아가서 엄청나게 많은 비트코인을 매수한다. 미래의 가격을 아니까 당연히 가능한 일이겠지.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가지고 있던 비트코인을 한 번에 대량 매도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그런 대규모 매도는 시장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시세는 흔들릴 거고, 원래 우리가 알고 있던 2014~2015년의 비트코인 차트는 Q의 개입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래 살고 있던 현재(P1)에서 알고 있던 그 차트는 뭘까??
자기 일관성 원리에 따르면, Q가 개입해 차트를 바꿨다면, 이미 그 개입은 현재의 비트코인 가격 흐름에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원래부터 Q가 매도한 버전의 차트를 보고 살아왔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Q가 과거에서 뭘 하든 간에, 그 결과는 애초에 우리의 현실 속에 ‘끼워 맞춰져 있었다’는 식이다.
물론 이는 자기 일관성 원리를 가능한 한 강하게 해석한 경우다. 노비코프의 원래 주장에 따르면, 모순을 일으키는 개입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며, 이 글은 그 제한이 실제로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묻고자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사람들은 종종 “시장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다”라고 말한다. Q가 비트코인을 팔긴 했어도, 전체 유통량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면 차트가 크게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하지만 여기서 내가 묻고 싶은 건 이런 거다.
“그 영향이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도 인과 관계 아닌가?”
인과 관계가 누적되고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영향의 크기 자체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공기 중에서 파리 한 마리를 쫓는 행위도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그 변화는 분명 어디엔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소한 변화까지도 현재에 전부 반영돼 있어야 한다면, 결국 우리 세계는 수천수만의 개입을 고려해 ‘조정된’ 현실이어야만 한다.
노비코프의 자기 일관성 원리는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모순 없이 현실이 유지된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이 원리는 설명이라기보다는 제약에 가깝게 느껴진다.
“왜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결국 “그렇지 않으면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라는 대답만이 남는다면, 설명은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결국 “왜 Q는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나?”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으면 모순이 생기니까”라는 대답밖에 못한다.
만약 자기 일관성 원리가 말 그대로 완벽하게 작동한다고 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선택의 자유는 상당 부분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는 과거에서 비트코인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있는 조건에서만 팔게 되어 있다. 이미 현실이 그렇게 짜여 있다. 그는 실제로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 채, 이미 정해진 흐름을 다시 한 번 통과하는 존재에 가까워진다. 마치 스크립트 배우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그 경험을 과연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새로운 선택을 하고, 현실을 바꾸고,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여행의 본질이라면, 자기 일관성 원리가 허용하는 시간여행은 그냥 정해진 길을 다시 밟는 반복일 뿐이다.
나는 자기 일관성 원리가 철학적, 논리적으로 꽤 매력적인 이론임은 맞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말하는 시간은 너무나 폐쇄적이고, 너무나 ‘결정되어 있는’ 세계다. 자유의지, 우연성, 그리고 진짜 의미의 선택 가능성은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시간여행을 상상하며 우리가 품는 감정은 단순한 꿈같은 일이 아니다. 그건 나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갈망이다. 그 가능성을 통째로 지워버리는 자기 일관성 원리는, 결국 시간여행이라는 우리가 꿈꿔왔던 상상력의 본질을 배신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