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머릿속을 통째로 꺼내서 찬물에 헹구고,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말끔하게 정리해서 다시 넣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라는 것이 원래 잡히지 않고 흐르는 거라더니, 요즘의 내 생각은 흐르는 게 아니라 들이닥친다. 파도처럼, 쉼 없이. 멈추지 않고, 내 공간을 잠식하고, 결국엔 나를 지치게 만든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이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그 농도가 더 짙어졌다. 일, 아이들, 가계, 관계, 미래, 과거, 선택, 후회…. 내 머릿속엔 늘 여러 개의 창이 열려 있고, 어떤 것도 완전히 닫히질 않는다. 한 가지를 겨우 정리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창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이 생각의 소음을 잠깐이라도 꺼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는 생각한다.
깊은 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건 문제가 있다고..
깊으면 편안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깊으면 가라앉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 그냥 지금의 나는 과부하가 걸린 기계처럼 뜨겁고, 과열되었고, 재부팅이 필요한 상태일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변화나 멋진 조언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여백이다. 잠깐의 멈춤, 아주 작은 틈, 내가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조용한 순간.
문제는 내가 멈추면 생각이 더 크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바쁠 때 더 편했다.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면 머릿속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게 해결은 아니었다. 다른 소음으로 나를 덮어버리는 것뿐이었다. 결국 조용해지는 순간, 숨겨진 생각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나를 덮쳤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도망쳤고, 다시 바빴고, 다시 지쳤다.
‘뇌를 씻고 싶다’는 말은 사실 마음이 너무 지쳐 있다는 신호다.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의 밑바닥에는 “조금만 쉬고 싶다”는, 아주 작은 바람이 숨어 있다. 도망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잠깐이라도 조용해지고 싶은 마음. 온몸의 힘을 빼고,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는 1분 혹은 5분. 그것만 있어도 숨이 트일 것 같다는 마음.
그래서 요즘 나는 작은 연습을 하고 있다.
잠깐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거나,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느끼거나, 아주 짧게라도 생각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만드는 것. 거창하지 않지만, 그 작은 틈이 나를 살린다. 나라는 사람은 거대한 결단보다 이런 작은 틈에서 다시 살아나는 타입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나의 방식이고, 나의 성격이고, 나의 세계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들 사이에 작은 쉼표라도 넣고 싶다.
뇌를 씻는 대신, 잠시 뇌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를 조금 덜 몰아붙이고, 조금 덜 분석하고, 나를 괴롭히는 소음의 볼륨을 아주 조금만 줄여보는 연습.
완전한 침묵은 없겠지만, 괜찮다. 아주 작은 조용함이면 충분하다.
나는 그 정도의 평온을 바라는 사람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