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AI’다.
회의 자료 곳곳에 자동화, 효율화, 비용 절감이 붙는다.
내가 속한 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사람이 하던 일을 시스템으로 바꾸고, 그 결과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움직임은 아주 논리적이고, 아주 차갑다. 그 논리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는 불필요해진다.
일전에 단순 재미로 본 영화 〈어쩔 수가 없다〉가 자꾸 떠올랐다. 실직한 남자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자동화된 회사의 관리자로 들어가는 이야기. 설정은 극단적이고 블랙코미디에 가깝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살벌해서가 아니라, 너무 닮아 있어서였다. 영화 속 세계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그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윤리도, 연민도 잠시 내려놓는다. 시스템은 감정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필요한 건 결과뿐이니까.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나라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솔직한 질문. ‘나는 지금 무엇으로 대체 가능한 사람일까.’
AI는 틀리지 않고, 지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월급도 오르지 않는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은 동료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그 기준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람답게 일해왔던 시간들이 갑자기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경력과 성실함은 쉽게 무력해진다.
그래서 요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질문 앞에서 자주 멈춘다. 더 열심히 하면 될까. 더 빨리 배우면 안전할까. 아니면 애초에 안전한 자리는 없는 걸까. 영화 속 남자처럼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살아남는 게임에 이미 들어와 있는 걸까.
하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살인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대신 더 잔인한 선택을 요구받는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구조, 서로를 경쟁자로 바라보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다.
아마 답은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라질 직업을 붙잡고 버티는 것도, 무작정 AI를 적으로 삼는 것도 아닌, 변화 속에서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일. 기계가 할 수 없는 판단, 맥락을 읽는 능력, 책임을 지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
영화는 끝났지만 현실은 계속된다. 웃고 넘길 수 없는 장면들이 일상이 되었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자리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완벽한 대비는 못 하더라도, 완전히 무력해지지는 않기 위해. 자동화가 밀려오는 이 시대에, 적어도 나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다. 시스템에 관리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계속 올바른 길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