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s Well이라는 주문

by 래온

친구는 실수를 했다.

200만 원을 넣으려던 주식에 0 하나가 더 붙어 2,000만 원이 들어갔다. 취소도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는 타이밍. 이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장이 열리면 올라주기를 바라며 바로 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상황을 설명하는 친구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나 자책을 먼저 예상했다. 보통은 그래야 정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친구는 의외로 담담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벌어진 일인데.”

그리고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래서 긍정회로 돌리기로 했어. All is well.”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사실 그 상황은 긍정으로 포장하기엔 꽤 큰 사고였다. 누구라도 ‘왜 확인을 안 했을까’, ‘이게 하필 지금’ 같은 생각을 수십 번은 곱씹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그 모든 생각을 의식적으로 멈췄다고 했다. 상황은 이미 시장과 운에 맡겨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으니 마음이라도 망가지지 않게 지키겠다는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마인드라도 케어하는 게 낫잖아.”

그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는 흔히 통제할 수 없는 일 앞에서도 계속 애쓴다. 이미 지나간 선택을 붙잡고 자책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미리 걱정하며 스스로를 소모한다. 마치 그렇게라도 해야 책임을 다하는 사람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책임을 회피한 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서 스스로를 구해낸 것이었다.

All is well이라는 말은 현실을 부정하는 주문이 아니다.

‘아무 일도 아니야’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 위에서도 나는 무너지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결과가 좋으면 감사하면 되고, 결과가 나쁘면 그때 감당하면 된다. 아직 오지 않은 불행을 미리 당겨와 마음을 망가뜨릴 이유는 없다는 태도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많은 순간은 이미 주식 주문 버튼을 눌러버린 뒤와 닮아 있다. 되돌릴 수 없고, 기다려야 하고, 결과는 내가 정한 만큼만 오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선택지 앞에 선다. 마음까지 같이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상황은 상황대로 두고 나만이라도 단단히 서 있을 것인가.

긍정회로를 돌린다는 말이 가볍게 들릴 때도 있지만, 사실 그건 꽤 어려운 기술이다. 불안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날 큰돈보다 더 중요한 걸 지켰다. 자기 자신을.

내일 주식이 오를지 내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친구의 마음속에서는 분명히 올랐다.

All is well.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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