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by 래온

요근래 김신회의 '아무튼, 여름'을 읽었고 누군가의 계절을 훔쳐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여름을 좋아하는 작가는 여름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사랑해온 경험과 사물들을 차분히 꺼내 놓는다. 햇빛의 각도, 땀의 온기, 계절이 남기고 간 감정들까지. 그 글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겼다. 나는 어떤 계절을 좋아해왔을까.

어렸을 때의 나는 단연 봄을 좋아했다. 봄은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계절이었다. 겨울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고,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는 느낌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교복 치마가 가벼워지고, 운동장에 먼지가 아니라 햇빛이 먼저 떠오르던 시절. 봄은 늘 기대와 함께 왔고, 나는 그 기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삶이 나를 실망시킬 수 있다는 걸 잘 몰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계절에 대한 취향이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봄은 아름답지만, 더 이상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가을이 주는 마음의 온도가 지금의 나와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계절. 무언가를 시작하라고 등을 떠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내려놓으라고 말하지도 않는 시간.

가을은 성숙한 계절 같다. 풍성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충분히 아름답지만 과시하지 않는다. 햇빛은 낮아지고, 바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섞여 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외롭기보다는 차분하다. 나는 아마 나이가 들면서, 계절에게서도 이런 태도를 배우게 된 것 같다. 덜 들뜨고, 덜 기대하고, 대신 더 오래 바라보는 법.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좋아했던 봄의 풍경도 사실 꽃은 아니었다. 벚꽃이 만개한 장면보다는, 그보다 조금 앞선 시간.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가지 끝에 푸른 기운이 번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좋았다. 앙상하던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 그 미묘한 변화가 나는 참 좋았다.

새순은 조용하다. 환호를 받지도 않고, 사진으로 남겨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작은 초록은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나는 아마 그때부터 이미 요란한 완성보다, 조심스러운 시작을 더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성장, 소리 없이 진행되는 변화.

지금의 내가 가을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가을은 이미 충분히 자라난 것들이 자기 자리를 찾는 계절이다. 무르익은 열매, 깊어진 색, 길어진 생각들. 이제는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멈춰 서서 지난 계절을 돌아봐도 되는 시간. 새순을 좋아하던 아이가, 가을을 좋아하는 어른이 된 셈이다.

계절이 바뀌며 마음도 함께 변한다. 어쩌면 우리는 매해 같은 계절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매번 다른 마음으로 그 계절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름을 사랑하는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나만의 계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지금의 계절을 닮아가고 있다고. 꽃보다 새순을, 봄보다 가을을 좋아하게 된 이 마음이, 나의 시간이 흘러온 방식이라고.

작가의 이전글All Is Well이라는 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