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상황과 직장인은 거기서 거기고 똑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대화 속에서 “노비를 해도 대감집 노비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현실적인 체념과 계산이 섞여 있었다. 이어서 친구는 말했다.
“안정에는 비싼 가격이 매겨져.”
그 순간 나는 ‘안정적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말인지, 또 얼마나 상대적인 개념인지 곱씹게 되었다.
대감집 노비라는 표현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이런 뜻일 것이다. 자유는 적지만 굶지는 않고, 선택권은 제한되지만 예측 가능한 내일이 보장되는 상태.
결국 사람들은 종종 자유와 불안을 맞바꾸며 안정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 그 울타리 안에서는 월급이 제때 나오고, 보험이 있고, 제도가 있고, 복지가 있는, ‘그래도 망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제공된다.
하지만 그 안정의 대가는 결코 싸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보다 해도 되는 말을 골라야 하며, 능력보다 조직의 방향과 사람 관계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때로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도 “여기가 그래”라는 말로 삼켜야 한다. 안정은 그렇게 조금씩 자존감과 선택권, 감정의 여지를 담보로 잡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안정적인 선택을 한다. 그건 비겁해서도, 도전이 싫어서도 아니다. 삶에는 책임이 있고, 부양해야 할 존재가 있고, 실패를 감당할 체력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안정은 성장을 멈추는 선택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결정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안정’을 너무 단일한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데 있다. 대기업 정규직은 안정적이고, 프리랜서는 불안정하다는 식의 단순한 구분. 하지만 실제로는 연봉이 높아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자리일 수 있고, 작은 조직이라도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훨씬 안정적일 수 있다. 안정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와 불안에 대처할 수 있는 여력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안정은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대감집 노비의 삶이 숨 막히는 감옥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안식처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조건과 가치에 맞는지다.
친구의 말처럼 안정에는 분명 비싼 가격이 매겨진다. 하지만 그 가격이 과연 ‘손해’인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값을 지불하며 살아간다. 자유를 위해 안정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안정을 위해 자유의 일부를 내려놓거나. 중요한 건, 그 거래가 무의식적인 체념이 아니라 스스로 납득한 선택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