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순간, 가치는 조용히 낮아진다

by 래온

회사 친구와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엔 청약에 당첨이 돼도 잔금 때문에 입주를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금리는 높고, 대출 규제는 까다롭고, 집값은 만만치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청약 당첨’이라는 말은 축하받을 일의 대명사였는데, 지금은 그 뒤에 조건과 불안이 따라붙는다.

나는 운 좋게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입주까지 했다.

그때도 청약 경쟁률도 분양대금도 만만치 않았었고 정말 운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말하면서도 덧붙이듯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근데 1층이야.” “주변에 대장 아파트도 아니고.” 말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분명히 나는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집에 살고 있는데, 그 순간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설명하기보다 부족한 점부터 열거하고 있었다. 마치 미리 평가절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그때 회사 친구가 말했다. “원래 인간은 자기가 가진 건 평가절하해.”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나 뿐만 아니라 우리는 대부분 그렇다. 남이 가진 것은 좋아 보이고, 내가 가진 것은 아쉬운 점부터 눈에 띈다. 같은 조건의 집이라도 남의 집이면 ‘괜찮다’고 말하면서, 내 집이면 ‘그래도 여기저기 아쉽지’라고 말한다. 가진 순간부터 비교는 시작되고, 만족은 뒤로 밀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후회도 그런 종류였다. 정말로 이 집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며 기준이 바뀌었을 뿐일까. 입주할 당시의 나는 분명히 계산했고, 고민했고, 그 안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을 했다. 그때의 나에게 이 집은 ‘감당 가능한 안정’이었고, ‘현실적인 선택’이었고, 무엇보다 ‘당첨되기 어려운 기회’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모든 맥락을 지운 채, 더 좋은 것들과 비교하며 아쉬움만 꺼내고 있었다.

친구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가진 거에 감사해야지.” 그 말은 너무 흔해서 평소라면 흘려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청약이 돼도 잔금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 집이 있어도 불안정한 주거를 반복하는 사람들, 선택조차 해볼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감사’라는 말이 갑자기 현실적인 무게를 가졌다.

감사하라는 말은 더 만족하라는 강요가 아니라, 내가 이미 통과한 문들을 다시 돌아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청약에 당첨됐다는 운, 입주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여건, 아이들과 함께 지낼 공간이 있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은 여전히 유효한 현재형인데, 나는 스스로 그것들을 과거형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사람은 참 묘하다. 손에 쥔 순간 그 가치를 줄이고, 남의 손에 있는 것을 키운다. 어쩌면 인간은 결핍보다 충족을 더 빨리 잊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 정말로 부족해서 불만인 건지, 아니면 익숙해져서 무뎌진 건지.

그날 대화 이후로 집을 다시 보게 됐다. 1층이라는 이유로 불편했던 점보다 편리했던 순간들, 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쉬운 마음보다 충분히 좋은 곳에서 잘 살아왔던 시간들. 완벽한 선택은 없지만, 나름의 이유와 맥락 속에서 충분히 괜찮았던 선택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게 됐다.

가진 것의 가치는 늘 그 안에 있지만, 우리는 자주 스스로 눈을 가린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의 한마디가 필요하다. “원래 인간은 자기가 가진 걸 평가절하한다”는 그 말처럼,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문장 하나가.

익숙해진 것의 가치에 대하여 오늘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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