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2』를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행복은 바라지도 않는다. 삶의 순간순간에 만족하는 찰나가 잦길 바랄 뿐이다.”
이 문장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삶의 순간순간에 만족하는 찰나가 바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내 삶을 두고 단조롭다고, 심심하다고 말해왔다. 20대의 나는 뜨거웠다.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기세가 있었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북돋울 줄 알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적어도 “그때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하루는 일정한 시간에 시작되고, 예측 가능한 일들로 채워진다. 큰 파도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슴을 치는 설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툭 내뱉듯 말했다. “요즘은 그냥 심심해.”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부러운 인생이네.”
그 말은 잠시 나를 멈추게 했다. 내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부러운 삶일 수 있다니. 파도 없는 바다는 지루해 보일지 몰라도, 폭풍을 건너는 사람에겐 간절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안정적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뜨겁게 타오르지 않는 대신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 시간들. 어쩌면 나는 그 위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빛을 부러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단조로움을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삶이 무사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충만해지지는 않는다. 책 속 문장처럼, 거창한 행복을 바라지 않더라도 순간의 만족은 스스로 길어 올려야 한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만족의 찰나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퇴근길에 일부러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는 일, 미뤄둔 책을 다시 펼치는 일, 오래 잊고 있던 취미를 다시 꺼내보는 일. 단조로운 일상은 바뀌지 않을지라도, 그 안의 온도는 내가 조금 움직일 때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깨닫는다.
심심함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삶이 공허해지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대신 바꿔주길 기다리면, 시간만 흐를 뿐이다.
“부러운 인생”이라는 말은 그래서 위로이면서 동시에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은 바라지 않겠다. 다만, 순간순간 마음이 고요하게 웃는 찰나가 더 잦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찰나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심심한 오늘이 누군가에겐 부러운 내일일 수 있다면,
나는 이 평온 위에 나만의 작은 파문 하나쯤은 스스로 일으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