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었던 길이 가까워지기까지

by 래온

문득 출근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내가 몸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도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가장 크게 체감했던 변화는 단연 출퇴근이었다. 예전에는 사대문 안 회사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몇 번 갈아타도 그저 일상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도로 이사를 온 뒤 같은 회사로 출근하는 길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이미 하루의 에너지를 절반쯤 써버리는 느낌이었다. 출근길은 길었고 사람은 많았으며,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지친 기분이 들곤 했다. “이걸 매일 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출퇴근만으로도 하루가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이 생활이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길 위에서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생활을 내가 과연 계속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출근길에 어느 칸이 덜 붐비는지 알게 되었고, 환승할 때 어느 쪽 계단으로 가야 조금이라도 빨리 이동할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몸이 기억하게 되었다. 어떤 날에는 출근길에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그냥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거리 자체가 아니라 거리의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길이 이제는 그저 내가 매일 지나가는 익숙한 경로가 되었다. 물리적인 거리는 변하지 않았는데 심리적인 거리는 분명히 가까워졌다.

이사를 온 지도 어느덧 2년 가까이 되어 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막막함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나는 꽤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여전히 출퇴근이 짧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길이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그저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아마 사람의 삶에서 많은 것들이 이런 방식으로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낯설고 버겁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지만,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그 환경에 맞게 변해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예전에는 힘들다고 느꼈던 일이 더 이상 그렇게까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능숙하게 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적응할 때까지 버티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적응의 시간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자리 잡기까지 우리는 늘 작은 불편과 피로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또 다른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작은 저력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은 그 시간을 통과해 내는 것. 낯선 길 위에서도 결국 나만의 속도와 리듬을 찾아내는 것.

오늘도 나는 그 길을 따라 회사로 향한다.

예전에는 멀다고만 느껴졌던 길이, 이제는 생각보다 멀지 않게 느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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