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내 마음이 움직인 순간

여행

by 양정회

지난주부터 정원희 작가가 추천한 구본형의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를 읽고 있다.

책 속 한 문장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여행을 떠날 때 얼마나 큰 짐을 들고 가는가? 짐의 크기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다."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여행을 가기 며칠 전부터 캐리어를 거실 한쪽에 펼쳐 둔다. 생각이 날 때마다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하나씩 던져 넣는다. 책과 노트, 작은 필통, 속옷과 옷가지들, 우산, 고데기, 돗자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자와 스카프까지.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하는 동안 짐은 조금씩 늘어난다.


짐을 싸는 순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여행의 반은 떠나기 전의 설렘이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게 된다.


여행을 떠날 때면 남편이 공항이나 터미널까지 배웅하며 말한다.

"이민 가는 거야? 가방이 왜 이렇게 크고 무거워?"


지난 시월, 딸과 함께한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에서 그 말의 의미를 절실히 느꼈다.

출발할 때 한국은 늦가을이었고 현지는 혹시 많이 추울 수도 있겠다 싶어 사계절 옷을 챙겼다. 일기예보도 검색하고 나름 고민해서 꾸린 짐이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우리는 스스로를 '여행 고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세비야는 한 여름처럼 더웠다. 햇볕은 살갗이 탈 것처럼 뜨거웠다. 반팔 티셔츠를 두 벌 챙겨 가긴 했지만, 날씨에 맞춰 입다 보니 더 이상 입을 옷이 없었다. 결국 자라에 옷을 한 벌씩 사 입었다.

딸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이렇게 큰 가방에 도대체 뭘 넣어 온 거지?"


짐의 무게를 실감 한 건 이동할 때였다.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그라나다에서 마드리드로 기차를 탈 때마다 짐 들어 올리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기차에 한 계단 올라서면 딸이 아래에서 가방을 밀어 올리고 나는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겼다.


포르투의 돌길 골목에서 큰 캐리어를 끌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아, 짐을 줄여야겠구나.'

그 생각이 절로 든다.


딸과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우리의 여행은 가방을 4분의 3만 채워서 떠나자고. 4분의 1에는 여유와 설렘을 담아 가자고.


짐이 많으면 여행은 고통이 된다. 특히 자유여행은 더 그렇다.

어쩌면 딸도 나도, 짐의 크기만큼이나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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