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혀지지 않는 하루

마음에서 꺼내는 글

by 양정회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소리가 어눌하고 평소와 달랐다.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물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출근 하지 말고 곧바로 진주경상대학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료진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밀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불러보았지만 입은 이미 굳어 있었고 눈은 감긴 채였다.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진단은 뇌졸중이었다. 의사는 수술은 잘 되었지만, 언제 의식이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기다려보자고 했다.


1995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과로 끝에 쓰러지셨다.


우리 사남매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주현미 노래를 이어폰으로 들려드렸다. 혹시라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기도했다. 제발 하루 만이라도 깨어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일 년, 이 년이 흘러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큰남동생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아버지 간병에 전념했다. 주말이면 여동생과 내가 대신 병실을 지켰다.


아버지가 쓰러지자, 평소 간이 안 좋았던 엄마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져 누웠다. 엄마는 입퇴원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6층, 엄마는 7층.

같은 병원, 다른 층에서 두 분은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식물인간 상태로 2년 3개월을 힘겹게 버텼다. 두 분은 같은 해, 예순두 살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엄마는 2월에, 아버지는 10월에. 그때 내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가슴이 텅 빈 듯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벌써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간다.

주위에서 장수하시는 지인의 부모님을 뵐 때면 부럽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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