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던 마음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진주로 유학을 갔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방을 구하고 부엌살림과 이부자리를 마련했다. 간단한 살림이었지만 기본적인 것은 빠짐없이 갖춰야 했다. 나는 부엌과 방 정리를 하고, 아버지는 방 청소를 하며 유리창까지 닦으셨다. 구석구석 살피고 혹시 위험한 곳은 없는지, 안전한지 꼼꼼히 확인하셨다.
그때는 연탄아궁이를 사용하던 시절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간간이 자취생이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사고 소식이 뉴스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집주인 아주머니는
"아버님이 참 자상하시네요."
하고 말하곤 했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그 자리는 늘 아버지가 대신하셨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하동 악양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부임하는 날도 아버지와 함께였다.
그곳에서도 자취를 해야 했기에 다시 방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챙기고 청소를 했다. 연탄가스는 안전한지, 시건장치는 잘 되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하나하나 살폈다. 고칠 곳이 있으면 손수 고쳐 주셨다.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큰딸이 못내 걱정되셨으리라 짐작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늘 큰딸을 걱정하며 돌봐주셨지만, 내가 철이 들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아버지는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
옛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곁에 조금만 더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효도할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뭐가 그리 급해 그렇게 빨리 가셨을까. 늦게나마 아버지의 사랑에 답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몹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