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던 순간
"제발 이 소원만 들어주세요. 간절히 바랍니다."
살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해 본 적이 없었다.
지난 4월, 아들 결혼식 전날 저녁 7시쯤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내일이 아들 결혼식인데 왜 그러실까.
시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였다. 지금 119로 이동 중인데, 병원이 정해지는 대로 빨리 오라고 했다. 남편에게 급한 상황을 알렸다. 잠시 후, 119 대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창원 관내 병원에서는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했다. 다른 시, 도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만일 병원을 전전하다가 도로 위에서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과 나는 그저 병원이 빨리 정해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또 전화가 왔다.
다행히 진주 경상대학병원에서 받아주겠다고 했단다. 병원에 도착하니 시누이와 시동생들이 소식을 듣고 이미 와 있었다.
의사는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 목숨이 인력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기가 찼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편은 의사에게 내일이 아들 결혼식이라고 말했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정이 훨씬 지난 뒤, 셋째 시누이와 아주버니를 병원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식은 다음 날 오후 5시 30분.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조금만 더 참아주시기를 바라는 기도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 그날 밤은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언제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계속 기도만 했다. 하나님께도, 부처님께도, 천지신명께도 빌고 또 빌었다. 아들 결혼식만은 무사히 치르게 해달라고.
나는 어떤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간절히, 또 간절히 빌었다.
시어머니는 13년 동안 요양원에 계셨다. 폭력성 중증 치매였다. 함께 살던 나를 유독 힘들게 했다. 심한 욕설에다 폭력까지. 솔직히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아들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날 오후 두 시 반에 시어머니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손자 결혼식 잘 치르라고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시어머니도 많이 참으신 것 같다고. 그렇다. 생전에 손자 사랑이 넘쳤던 분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위해 끝까지 애써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뿐이다.
다음 주에 시아버지 기제사가 있다. 산청 호국원에 가서 제를 지내고, 시어머니께도 함께 참배할 예정이다.
이제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은 남아 있지 않다. 아들 결혼식을 계기로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를 모두 씻어 보냈다.
기도의 시간은 그렇게, 사랑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