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나는 길 하나

길 하나

by 양정회

어린 시절, 초등학교까지는 3킬로미터 정도 되는 길을 걸어 다녔다. 하루에 버스 서너 차례밖에 다니지 않았다. 걸어서 학교에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벌써 반세기가 훌쩍 넘은 이야기다. 어쩌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를 일으키던 신작로 길. 그 길은 우리의 운동장이었고 놀이터였다.


등하굣길에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관심사였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새싹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길가에 엎드려 '삐삐'를 뽑아 먹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지각을 해 선생님께 혼이 나고 벌을 서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손목시계 하나 차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었다.


지금처럼 간식이 흔하지 않던 시절, 삐삐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억새풀처럼 여린 잎을 벗겨 속의 하얀 부분을 먹으면 달고 부드러운 맛이 났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하굣길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우리의 시간은 끝이 없었다. 농번기에는 놀다 늦게 들어가 부모님께 야단을 맞기도 했다. 같은 학년만 해도 동네에 열두 명이나 되었으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


벚나무 가로수 그늘 아래 책보자기를 던져 놓고 편을 갈라 공기놀이를 했다. 동그랗고 작은 비슷한 크기의 돌멩이 다섯 개면 충분했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바로 아래 시냇물로 내려가 옷을 입은 채로 멱을 감았다. 입술이 새파래질 때까지 물놀이를 하다가, 널따란 바위 위에 누워 옷을 말리곤 했다.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 개구리나 지렁이를 들고 쫓아오면, 우리는 "엄마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그 비명과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추운 겨울 아침이면, 물고구마 두어 개를 품에 넣고 집을 나섰다. 등굣길, 나만 아는 풀숲에 그것을 숨겨 둔다. 그리고 하굣길에 꺼내어 친구들과 돌아가며 한 입씩 베어 먹는다. 나 한 입, 친구 한 입, 또 다른 친구 한 입. 아삭하고 달큼한 그 맛은 세상 어느 간식보다 귀했다.


봄이면 삐삐를 뽑아 먹고 여름이면 공기놀이와 멱 감기를 하며, 겨울이면 물고구마를 나누어 먹던 길.


잠시 그 길을 떠올리니 어린 시절의 내가 성큼 다가온다. 그때의 동무들과 나를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지고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아직도 기억나는 길 하나.

신작로에 켜켜이 배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는, 몇 날 며칠을 풀어도 모자랄 것만 같다.


그 길을 걸으며 나는 자랐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맨발로 뛰고 친구와 한 입을 나누며 마음을 키웠다. 아마도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그 신작로 위에서 흘린 웃음과 땀이었을 것이다.

가끔은 그 길을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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