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도넛 냄새만 맡으면 중학교 2학년 때의 겨울로 돌아간다. 12월,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던 오후였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교문을 나섰다. 학교 정 문 앞 문방구에는 이미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그냥 지나치자고 마음먹었는데, 막 튀겨낸 도넛 냄새가 발목을 붙잡았다.
아저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기름에 떨어뜨렸다. 노릇하게 부푼 도넛을 건져 설탕통에 담그고, 하얀 설탕을 듬뿍 묻혀 건넸다.
한입 베어 물었다. 뜨겁고 쫄깃했다. 고소한 기름 냄새와 달콤한 설탕이 입안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손에도, 입가에도 설탕이 묻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하나를 더 사 먹었다. 그리고 버스비는 사라졌다.
이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집까지는 버스로 20분, 걸으면 한 시간이 넘는 4킬로미터 거리였다. 우리는 신작로를 걸었다. 그때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때리고 손과 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걸었다. 희뿌연 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순간 손을 들어 세우고 싶었지만, 주머니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입가에 남은 설탕을 슬쩍 핥았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달콤했던 맛이 그 순간에는 괜히 서러웠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함께 도넛을 먹은 친구들과 수다 떨고 장난치며 가느라 걸음은 더뎠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뭐 하다가 이렇게 늦었어?"
엄마의 걱정 섞인 꾸중을 들었다.
지금도 도넛을 보면 그 겨울의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남편이 퇴근길에 사 온 찹쌀 도넛보다, 캐나다 밴쿠버 딥코브에서 딸과 먹었던 도넛보다, 그날의 그 도넛이 더 고소하고 더 선명하다.
버스비와 맞바꾼 달콤함,
차가운 눈발과 친구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입가에 묻은 설탕의 맛.
지금도 그 냄새를 맡으면, 입가에 설탕이 묻어 있던 그 아이가 내 안에서 조용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