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공원, 오늘의 나

츄러스와 레트로 공원

by 양정회

오늘의 글감을 보는 순간, 마드리드 레트로 공원이 떠올랐다.

지난해 가을 마드리드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오후 늦은 비행기라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었다.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프런트에 맡긴 채 작은 배낭 하나만 메고 숙소를 나섰다. 오전에는 레트로 공원, 오후에는 왕궁 투어 예약이 되어 있었다.


마드리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공원.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다섯 배나 크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걸어서 5분 거리에는 프라도 미술관도 있다.


나는 딸과 여행할 때면 그 나라의 공원을 즐겨 찾는다.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기도 하고 숲과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가장 우리다워지는 시간이다.


전날 저녁에도 거리 산책을 하다가 이 공원까지 왔다가 어둠이 내려 입구 쪽만 보고 발길을 돌렸었다. 낮에 다시 마주한 공원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가을처럼 쾌청한 날씨였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더 높고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커피를 사고 근처 맛집에서 츄러스도 포장했다.


적당한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펼쳤다.

커피 한 모금 츄러스 한 입, 그리고 하늘 한 번.

몸도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책을 읽다가 드러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이대로 하루 종일 머물고 싶었다.

한적한 호수에는 보트를 타는 사람들, 물살을 가르며 노니는 오리 떼, 개와 산책 나온 사람들, 견학 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어우러졌다. 물가에 부서지는 윤슬까지, 모든 풍경이 평화로웠다.

우리나라처럼 이곳에서도 소그룹으로 러닝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있고 싶었지만 왕궁 투어 시간에 맞춰 서둘러 공원을 나왔다.

지금도 끝도 없이 펼쳐진 잔디밭과 커다란 나무숲, 그 사이로 드러난 파란 하늘이 선명하다.


언젠가 다시 그 공원을 찾아 책을 읽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낮잠 한숨을 자고 싶다.

그날의 평화 속으로 잠시 돌아가고 싶다.


그날의 하늘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시간이 머물던 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