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이에게
"무진아,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사람들을 잘 챙기고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었어."
E 아주머니는 장례를 치르느라 차가운 내 손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내가 아빠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라도 좋게 가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E 아주머니는 아빠의 동네 친구의 아내이자,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기 전에 엄마와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E 아주머니는 내가 꿈꾸던 엄마상이었다. 인문학에 대해 생각하고, 그 관점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학예회 때면 수어로 노래하는 법을 알려주시던 분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우는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H 오빠는 나중에 그 모습을 떠올리며, "무진아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참 많이 울었어."라고 해주었었지. 나의 슬픔에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해주던 사람들.
E아주머니는 내 기억에 몇 없을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너희 엄마도 참 좋은 사람이었어. 우리는 자주 어울려 놀았단다. 엄마는 너무 예쁘고 성격이 좋았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둘은 왜 함께일 수 없었을까.
그리고 아빠는 왜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이 되었던 걸까.
최근 상담에서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문득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 아빠는 동물들을 참 좋아했는데, 그래서 집에 강아지가 항상 2마리 정도는 있었다. 초등학생 때도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진돗개 한마리가 아빠를 너무 잘 따르고 영특하여 아빠가 유달리 예뻐했었다. 묶여서 크는 시골집 똥개답지 않게 가끔 산책할 시간도 주어지는 특혜를 받는 강아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갔다 돌아오니 마당에 그 강아지가 없었다. 듣기로는 개소주 만드는 곳에 팔아버렸다는 것 같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는 그 날, 괴물이 되었다. 아빠는 상을 뒤엎고, 할아버지를 밀치고, 말리는 할머니를 떠밀었다. 할머니는 뒤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옷걸이를 붙잡다가 함께 넘어졌다. 나는 넘어진 할머니를 챙겼다. 옷걸이가 가슴을 쳐 아픈 것 같았다. 밖으로 뛰쳐나간 아빠는 내 자전거로 남아있던 마지막 강아지를 때렸다. 죽었던가.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깨갱 거리던 강아지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 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빠의 횡포를 피해 어디론가 피신 했고, 작은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의 잠자리를 봐주셨다. 달빛 비치는 밤에 작은 할아버지가 창 밖을 보며 서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아빠는 지금껏 그렇게 해야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신의 분노를 알아줬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서. 좌절된 욕구를, 결핍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그 정도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해야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려줘서, 그래서 그렇게 점점 더 과격한 방식으로 분노하게 되었던 건 아닐 까요."
비폭력대화의 작은 책 시리즈 중 "분노의 놀라운 목적"이라는 주제가 있다. 저자는 분노가 충족되지 않은 욕구의 소외된 표현이라고 얘기한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생각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한 일 때문에 고통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즉, 잘못이나 무책임, 부적절함 등을 암시하는, 우리가 타인에 대해 내리는 도덕적 판단들이 담겨 있지요. 애초에 이러한 판단들은 모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비난이나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해치고 싶을 때, 사실 진짜 욕구는 우리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것 입니다."
장례식에서 E 아주머니가 아빠의 밝은 면들에 대해 이야기 해줬을 때,
여전히 나는 아빠의 사랑과 분노가 합치되지 않는 상태였기에 괴로웠다.
아빠는 내게 사랑의 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천사와 악마가 하나일 수 있는 걸까.
요즘 조금씩 아빠의 분노가 상처받은 몸부림으로 해석되면서 아빠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어떤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주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