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할아버지와 아빠
얼마 전에 딘의 신보 DIE 4 YOU가 나왔다. 무려 6년 정도의 공백을 깨고 컴백한 것이다.
떠나버린 사람에 대해 노래하는 딘의 쓸쓸한 목소리는 모든 생명이 져버리는 겨울에 어울렸다.
겨울은 아빠가 사라져버린 계절이기도 해서, 노래를 들을 때면 아빠가 떠났던 그 날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지금.
올해의 죽음들에 대한 글을 적기 위해, 다시 DIE 4 YOU를 듣고 있다.
올 추석에 고모는 막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할아버지가 그 얘기를 삼촌들에게 하니, 삼촌들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왜 내게 말하지 않았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삼촌들은 아직 장례일정이 정해지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서 돌아가셔서, 경찰에서 자연사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쓸쓸한 죽음이었다. 막내 할아버지는 단칸방에서 혼자서 세상과 이별했다. 아빠랑 죽음의 형태마저 참 닮은꼴이었다. 고모가 "(막내 할아버지) 딸들은 몰랐는데, 죽기 전에 딸들 곁을 계속 맴도셨나봐요. 그래서 딸들 집 근처에 집을 구해서 계속 지켜보셨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알고 딸들이 많이 울었어요."
내 기억에 막내 할아버지는 아빠와 아주 친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가득했다.
술꾼끼리 통하는 게 있었던 걸까?
아빠랑 막내 할아버지 사이가 그렇게 애틋한데도, 막내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집에 들르는 일은 없었다.
"그놈이 (할아버지의) 엄마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그걸 보고 눈이 뒤집어져서 뛰어올라갔지. 빨랫줄을 고정해놓던 막대를 다리로 두동강을 내서, 그놈을 쌔려줬지(때려줬지). 그러니까 송아지처럼 산으로 뛰어 도망가더라고. 그 뒤로 나만 보면 도망다니고, 내 곁엔 절대 안 와. 엄마를 죽일라고 하는 자슥(자식)이 어딨냔 말이야!"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꺼낼때면 마치 그 젊은 날의 아들이 된 것처럼 씩씩거렸다. 막내 동생을 내쫓고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둘이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몰라, 저 놈이 날 죽일라 안카나!(죽이려고 하잖아)"
막내 할아버지는 원래 순사(경찰)셨다. 하지만 후임이 말을 안 듣는다고 후임의 다리에 총을 쏴서 강제 전역 당했다고 했다. 그 뒤로는 순탄치 않은 인생이었다. 막내 할아버지의 주폭을 견딜 수 없었던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도망쳤다. 막내는 걷지도 못할 나이였다고 했다. 수십년이 지나, 막내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두 딸 곁에 몰래 찾아가 두 딸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작년 M고모 결혼식 때 막내 할아버지를 봤다고 했다. 막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은 이후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형님, 저입니다."하고 인사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막내 할아버지가 미워 "난 너같은 동생 없다!"라고 화를 냈고, 막내 할아버지는 그렇게 멀리 사라지셨다고. 그 뒤로 막내 할아버지가 한 번 더 전화가 와서, "그래 우리 이번 추석에 만나자."라고 화해와 약속을 했다고 하셨다.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지만.
내게도 부고문자가 왔다. 아재가 할아버지랑 연락하기 싫어서 내게 보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은 걸 굉장히 기분 나빠하면서 내게 가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산에 있는 내가 대구 장례까지 찾아가기 힘들기도 했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가기도 뭐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삼촌들도 내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자꾸 눈에 밟혔다. 아빠가 막내 할아버지를 너무 사랑했던게 생각이 나서. 아빠가 살아있을 때 마지막으로 동생과 셋이서 대구에 영화 데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막내 할아버지를 우연히 동성로 길에서 마주쳤었다. 막내 할아버지는 포항 쪽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래서 아빠도 나도 아주 당황했었다.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표정관리가 안 됐다. 막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막내 할아버지는 사실 대구에 와있다고, 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 대구에 온 이유가 딸들 곁에 있기 위해서 였던 걸까. 그 모든 기억들이 나를 붙잡아 조의금을 보냈다. 김## 손녀 김무진.
아빠가 이 소식을 들으면 많이 슬퍼했을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 눈이 빨개질만큼.
나는 아빠를 위해 조의금을 보냈다.
그리고 몇 주 전, 할아버지가 전화가 왔다. "너 부조했냐?"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았나 싶었는데, 막내 할아버지의 딸들이 할아버지를 찾아 온 거다. 내 이름을 보고.
할아버지랑 따님들은 함께 많이 울었다고 했다.
"얼굴 보니 하나도 모르겠더라. 가족 사진 보내준다고 하니까 너한테도 보내줄게. 올 설에도 오기로 했다. 니 이름 찍혀있다고 말하더라. 부조 할 생각을 어떻게 했노?"
"잘했제?"
서로를 죽이고 싶고 죽어 버리고 싶은 이 가족의 비극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끊어질 듯 하다가도 이어지고야 마는 이 진한 피의 굴레. 한번도 본 적 없는 가족에게서도 느끼는 애정과 품어주고 싶은 이 마음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