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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Oct 17. 2021

번외1. 감정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다.

독서리뷰: 아몬드 - 손원평

https://youtu.be/jIlcjp4Xs8w


'감정'은 쉼 없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아침에 눈떠서 일어나기 귀찮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하고, 날이 좋아 기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날 생각에 설렐 수도 있다. 꿈에서도 감정을 느끼는 인간을, 감정을 제외하고 설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라는 소설은 이렇게 중요한 '감정'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감정을 느끼는 당신이 바로 인간 아닐까요?'


    감정은 무엇일까? 심리학에는 감정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그중 사건이나 자극에 대한 신체 반응이 일어나면, 그 신체 반응이 기쁨인지 분노인지 해석함으로써 정서를 느낀다고 설명하는 이론이 가장 보편적이다. 뇌에는 편도체라는 아몬드처럼 생긴 뇌 부위가 있는데, 편도체는 공포라는 극도의 부정적인 감정에 강력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 외의 감정들에도 반응한다.  ‘뇌’를 ‘인지처리기관’으로 가정한다면,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예, ‘칼’ 혹은 ‘강도’)을 만나면 편도체는 이걸 ‘공포’와 관련된 자극이라고 인식하고, 신체내적/외적반응을 담당하는 피질하영역들은 정보를 받아 땀을 흘리거나, 심장이 빨리 뛰거나, 도망가거나, 얼어붙거나 하는 반응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자신의 정서를 ‘인식’한다.


    아몬드의 주인공은 편도체가 극도로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다. 주인공은 편도체가 작기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누가 위협하는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칼에 베이고 뜨거운 주전자에 데어도 공포를 학습하지 못한다. 의사들은 주인공의 증상을 종합하여 ‘감정표현불능증’이라고 정의 내린다(물론 이건 과학적인 근거라기보다는 작가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설계 한 가설이다).


    감정표현불능증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감정을 신체반응의 일부로 인식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일어나는 '두근거림'이라는 신체반응을, 일반적인 사람들은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느끼며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나 봐'라고 자신의 감정을 추론하고 인식한다. 하지만 감정표현불능증인 사람은 '오늘 내 가슴이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심장에 이상이 생긴 걸까?'라고 해석하며 그 신체반응이 감정의 변화로 인한 반응이라고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표현불능증인 사람들은 종종 신체화 증상을 보이며 마음이 아픈 것을 몸이 아픈 것이라 오인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크면서 조금씩 편도체의 크기도 커진 건지, 점차 감정을 배워가게 된다. 주인공이 해야 하는 첫 번째 작업은, 자신이 느끼는 이 신체반응들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것인지이다. ‘두근거림’이라는 신체반응은 많은 정서상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흔한 반응이다. 사람들은 화가 나서 흥분해도, 불안해도, 무서워도, 스릴을 느껴도 ‘두근거림’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두근거림을 아무런 혼란 없이 각자 상황에 맞는 정서범주에 맞춰 분류할 수 있다. 한 연구집단은 이러한 분류가 가능한 것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신체반응을  각 상황별로 범주화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하고, 내가 준비가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 일 때 느끼는 ‘두근거림’을 우리는 학습을 통해 ‘불안’이라고 개념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의 상태를 ‘불안’이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도, 친구들이 감정적으로 힘들고 인간관계가 힘들어지는 이유가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A라는 친구와 어렸을 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친구가 자기는 엄청 고집불통인 아기였다면서 부모님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마트 복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고 했었다. 그때는 우슷개소리로 듣고 넘어갔었는데, 최근에 친구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분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하고 그저 데굴데굴 구름으로써 악을 썼던 아이가 자라서 이제는 바닥을 구르지 않을 뿐 그와 다를 바 없는 상태의 어른으로 자라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


    B라는 친구는 예전에 내게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지 못한다며 무척 섭섭해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그렇게 공감을 잘 못해주나? 하며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친구와 나의 관계를 돌아보니, 친구는 한 번도 내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상황’만 이야기했던 것이다(심리학에선 이를 간접화법이라고 한다.)


    어떤 상황들은 상황설명만으로도 분명하게 상대방의 감정을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자 친구가 바람 폈어’라고 상황을 말한다면 나는 화났겠다, 혹은 속상했겠다 같은 감정을 추론할 수 있다. 물론 이 외의 감정도 존재할 수 있지만 상황에 맞는 대표적인 감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버리고 간 엄마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어’라고 한다면, 내 입장에서는 친구가 ‘엄마’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 ‘원망’인지 ‘그리움’인지 아니면 그 둘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인지에 대한 힌트가 없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느꼈을 감정도 슬픔인지 혹은 기쁨 일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시간이 거듭되고 더 많은 ‘상황’을 공유할수록 내가 친구의 감정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들이 더 늘어나서 나의 예측 정확도가 높아지겠지만, 초반에 그런 높은 정확도를 갖기 힘들게 때문에 만약 B에게 내가 공감해주기 어려웠던 것이 불화까지 이어진다면 좋은 관계로 남기 힘들 것이다.


    상황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은 세분화되어있지 않고 신체적 반응과 결합된 총체로 마음속에 추상적으로 자리 잡아 있을지 모른다. B라는 친구에게 ‘엄마’에 대한 감정을 물어본다면 99%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감정을 언어로 분류해보는 작업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감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게 된다.


    감정은 세분화하지 않으면 소화되지 않고 체해버린다. 피자 한판을 여덟 조각으로 자르지 않고 한 번에 다 먹어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피자를 여덟 조각으로 자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건 나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남과 교류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과거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예능에서 가수 개리 님의 아들(하오)과 가수 문희준 님의 딸(잼)이 교류하는 장면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또래에 비해 언어능력이 뛰어난 하오에 비하여 잼은 아직 의사표현 능력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런 잼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이 행동이 하오를 포함한 타인에게 오해를 사기 쉽다는 게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잼의 집에 놀러 왔던 하오가 이제 돌아가야 했는데, 잼은 더 놀고 싶은 마음에 가지 말라는 뜻으로 하오를 잡아끌다가 넘어트렸다. 그런 잼에게 하오는 울면서 ‘말로 해’라고 하는데, 이게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과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만나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잡아끄는 행동은 괴롭히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좋아서 가지 말라고 붙잡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행동만으로 그 의도를 파악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주변을 보아도 감정적으로 힘든 원인의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모르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듯하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있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있게 되고, 그럼 자신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스스로  파악할  있기에 상대방에게도 올바른 방향으로 요구할  있게 된다. 그러니 감정적 교류를 하고 싶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언어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감정'에도 모두 '이름'이 있다.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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