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여섯 개의 이름

한 여자의 무너짐과 한 엄마의 탄생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피의자이며 소송인이자 아이를 위해 취업을 준비하는 아줌마이고, 한 명의 여자이자 한 여자의 딸이다. 이 여섯 개의 이름이 내 삶에 하나씩 덧붙여지기 시작한 건, 아이를 품기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다.

‘결혼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중국 유학 시절,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만나온 사람이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세 번이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다.

처음엔 그가 나와 달라서 좋았다. 성실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미루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나는, 7~8년이 지난 지금은, 나 역시 일 미루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연애 초기, 그는 늘 자기 일이 먼저였고 공부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나를 자주 만나주지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이미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느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렸기에 사람을 보는 눈도, 관계를 파악하는 감각도 없었다. 그저,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고, 중국 드라마를 나란히 보았고, 영화관도 함께 다녔다. 그렇게 추억을 쌓았다. 정말 많은 것을 함께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하얼빈 여행. 지금 생각해도, 그 도시의 추위는 뼛속까지 아렸다. 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안 좋은 기억도 있지만, 하얼빈 여행을 다녀온 것만큼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과의 첫 여행이었기에 설렘이 컸다. 우리는 하얼빈역에 도착해 기념사진도 찍고, 야시장도 구경하고, 빙산 축제도 다녀왔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큰 문제 없이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하얼빈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는 나보다 술이 약해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혼자 남은 맥주를 마신 뒤 샤워하고 나왔다. 그 순간, 그의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람음이 울렸다.

우리는 그전까지 서로의 휴대폰을 본 적도,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달랐다. 이유 없이, 아주 강하게 ‘핸드폰을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고 나는 보고야 말았다. 지금도 그 여자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녀는 이렇게 보냈다.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적당히 술 마셔. 사랑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람이 배신당했을 때, 대부분 이런 일이 자신에게 닥친다면 화가 나서 욕부터 나올 거로 생각할 것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진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냉정하게 물었다.

“오빠, ○○이가 누구야?”

그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넘기려 했다. 자자고, 지금은 피곤하다고 했다. 나는 반복해서 물었다. 누구냐고. 그는 끝까지 발뺌했다. 계속해서 “모른다.”라고만 반복했다.

나는 결국 말했다.

“○○이가 이런 메시지를 보냈어. 내가 직접 봤어.”

그제야 그는 마지못해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고, 믿기 힘든 해명을 내놓았다.

“우리 아빠 회사에 조선족 직원이 있어. 내가 중국어 공부하려고 바로바로 물어보려고 연락한 거야. 진짜 아무 마음도 없어.”

그 엉터리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그 순간을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의 하얼빈, 당장 돌아갈 수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나는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안고, 울며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그 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그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 세 번째에서야 우리는 끝났다. 더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그가 또다시 내가 아닌 눈이 다른 곳으로 향해 있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했을 때,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든, 어떻게 헌신하든, 그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겪은, 신뢰를 저버릴 사람의 특징

1. 전화를 받을 때는 늘 자리를 피했다.

2. 휴대폰은 어디를 가든 손에서 놓지 않았다.

3. 주말이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4. 프라이버시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긴다.

5. 갈등이 생기면 쉽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이런 신호들을, 그때의 나는 ‘개인의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감추는 사람의 습관이었고, 나는 그에게서 신뢰를 잃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놓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끝내 함께했다면 그 관계에서 신뢰는 이미 무너졌을 테고, 무너진 신뢰 위에 쌓이는 건 고작 외면뿐이었을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나는 서울에 있는 한 기업에 입사했다. 입사 후에도 그와 계속 연애를 이어갔지만, 결국 그 인연도 끊게 맺었다.

그렇게 낯선 서울에서 나만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서울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시였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외로웠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말 한마디 나눌 사람도 없이 조용한 벽들만 나를 맞이했다. 주말이면 혼자 저녁에 맥주 한 잔을 들며 외로움을 달랬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해 사람들과 어울려 보려 했지만, 그 시간이 내 안 깊은 곳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즈음, 지금의 전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그 만남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내 인생의 갈림길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될 줄, 그리고 그 관계가 결국 법정까지 이어지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은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에 대해 대단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 SKY 중 한 대학교에 다녔고,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의 미래 계획, 가족 상황, 경제적 여건까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시시콜콜 다 이야기했다. 나는 그것이 진심에서 비롯된 고백이라 생각했고, 그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기에 자신의 모든 걸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거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좋게 말하면 참 순진했고,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했다. 본가는 서울의 어떤 지역에서 유명한 아파트라고 했고, 대학교와 전공, 직업까지 완벽하게 갖춘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그 사람 배경 보고 만난 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그와는 다르다. 내가 진짜 믿은 건, 그가 보여준 '마음'이었다. 진심처럼 보였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나에게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잘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어느 날, 그와 다툰 끝에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다소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다투면 항상 내가 네 자취방으로 가는데, 왜 너는 내가 사는 곳에 오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늦은 밤, 그의 본가라던 유명한 아파트로 향했다. 그가 나를 보고 마음이 풀렸는지, 대여를 한 차에 태워 아파트 단지를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저기 불 켜진 거 보니 아빠 들어왔나 보다.”

그러고는 한 주차된 차 번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차는 우리 아빠가 엄마 몰래 산 거래. 엄마한테는 비밀이라 여기 세웠나 봐.”

그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에는 그 모든 말이 진실인 듯 들렸다. 순진하게 믿었다. 이렇게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내가 먹고 싶다는 건 꼭 사다 주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함께 가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혼인 전 아이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기를 가진 후, 그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그제야 나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에게는 여전히 잘해줬지만, 아기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했다. 나는 자주 말했다.

“자기야, 우동이(태명)한테 얘기 좀 해줘. 동화도 좀 읽어주고 말도 걸어줘.”

그러면 그는 마지못해 무뚝뚝하게 말했다. “우동아, 안녕. 조심히 나와.”

처음엔 그저 무뚝뚝한 성격이라 여겨지기도 하고 ‘아직 아기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실제로 느껴보지도 못했으니 그렇겠지.’라고 넘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지못해 우동이에게 말해주던 그 한 문장에서 그 사람의 가족 분위기, 자라온 환경, 그리고 그가 어떤 아버지를 보고 자랐는지까지도 어떤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받은 사랑의 크기만큼만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는 너무도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였을 것이다.

임신 7개월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우리는 경제적인 사정으로 시아버지 댁에서 지내고 있었고, 그날은 남편이 근무에 나간 날이었다.

함께 다과를 먹기 위해 시아버지, 시동생, 그리고 나와 배 속의 아기가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던 그 식탁에서 시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뒤집었다.

“우리 아들이 아직 대학교도 못 나왔고, 수능 준비하고 있으니, 너도 좀 더 참고 잘 지내보자.”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학교도 안 나왔다고?' 나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멍해졌고,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님, 제가 남편한테 들은 얘기랑은 좀 다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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