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제가 남편한테 들은 얘기랑은 좀 다른데요...”
내가 믿었던 이야기들과 현실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와 결혼한 걸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는 하나씩 읊어내며 그 안에 단 하나라도 진실이 섞여 있기를 바랐다. 손끝이 떨리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내 눈은 시아버지를 바라보며 애써 침착하려 애썼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시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체면을 위해 시동생을 조용히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는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 생활비는 내가 다 책임질게. 너무 미안하다. 그렇다고 우리 현석이(전 남편 가명) 너무 나무라지 마렴. 그래도 우동이 아빠 아니냐.... 현석이 내년엔 정말 대학 합격하면 그때 아버님, 어머님께 사실대로 얘기드리는 걸로 하자.”라고 말하셨다.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배 속의 아기와 우리 가족들이 떠올랐다. 좋은 집안의 사위를 얻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모습이 떠올랐다. 이미 소문처럼 퍼졌을 그 말들이 내 어깨 위로 차곡차곡 무게로 내려앉았다.
‘내가 이걸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침대에 주저앉아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부터, 그 집안의 모든 사람은 내게 적이 되었다. 남편은 물론이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까지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한 건 아니지만, 그런 남자를 만든 부모, 결국엔 핏줄이라는 이유로 형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시동생까지 모두.
그 집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건 고문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정으로, 부산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만약 그때 부산으로 내려갔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 나 자신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아버지는 배속에 자신의 손주를 품고 있는 나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거짓말을 한 자신의 아들의 평판이 어찌 될까, 내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할까. 그 순간에도 그것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과연 부성애였을까. 아니면, 그저 기이하고 이기적인 보호 본능이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 핏줄은 못 속이는구나.’ 그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나는 그날, 또 한 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였다. “내 아들은 절대 저렇게 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이미 개인이 아닌, 한 아이의 엄마였다. 그리고 이 아이를 낳기로 한 순간부터, 내가 당한 일이 계획적인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이 아이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다.
그날 저녁, 중대한 거짓으로 나를 속인 남자가 퇴근해 돌아왔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했고, 마지막엔 물었다. “사실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이라고 했다.
아기가 생겼고, 나는 중절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자신에게 경제력이 없다는 걸 숨기기 위해 그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그는 나에게 자기 학력, 집안, 재산, 심지어 시동생의 학력과 결혼 여부까지 없는 이야기를 창작해서 늘어놓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는 그저 깊은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 큰 거짓말들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내가 떠올리는 이 이야기조차도 진짜 그 사람의 ‘진실’된 말인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그는 늘 자신이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능을 치른 후, 본인보다 못하던 친구들은 모두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했는데 정작 자신만 실패했고, 그 후로 슬럼프에 빠졌으며 몇 해에 걸쳐 다시 도전했지만 매번 물수능이니 불운이니 하는 이유로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마음속 깊이서 이런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그게 지금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거지? 그래서 어쩌라고?’
그 순간 나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곱씹고 있었다. 그 모든 과거가 어땠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철저히 속임을 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나는 한 아이의 엄마다. 현실이 그렇다. 나는 누군가의 헛된 자존심을 감싸줄 여유가 없다. 한 남자의 실패를 위로하고, 그의 상처를 공감하기엔 내 손에 쥔 것들이 너무 무겁다. 내 배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와, 이제는 무너져버린 삶의 조각들, 그리고 그 모든 걸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
그 사람은 그저, 한때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자격지심 때문에 덧칠한 거짓말 속에 자신을 가두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자신도 그 거짓을 진실처럼 믿으려 애쓰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뒤덮은 거짓말들이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게 될 줄은 그때 그는 알지 못했을까?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을까?
법적으로는 “사기”라는 범죄가 되려면 금전적 피해가 명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파괴하는 것, 그리고 이제 막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한 아기의 삶까지 흔들어 버리는 일. 그건 그 어떤 금전적 손실보다도 훨씬 더 큰 죄라고 나는 믿는다. 그 이후 나는 매일 울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왔다.
그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몇 달 동안 냉동실에 얼려둔 삼겹살을 꺼내며 “이거 에어프라이기에 구워 먹어. 냉동실에 고기가 너무 많아.”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그쪽 가족들에게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들이 아기를 만지는 것, 바라보는 것을 내가 보는 것조차 내 안에 쌓인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고, 나는 그저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기만 했다. 친정엄마와의 영상통화조차 힘들었다.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어서.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자주 못 본 척하고 넘겼다. 그조차도 미안했다.
그러던 4월의 어느 날,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던 아침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고, 그 순간 배 속에서 ‘톡’하고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동이의 태동, 내 아이가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이렇게 무너지면, 이 아이도 다 느끼겠지...’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누구도 원망하지 말자. 비난도, 후회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이 아이 하나만을 보고 가자. 억지로라도 웃어야 했다. 절망 속에서라도 ‘괜찮다’고 말해야 했다. 그건 연기가 아니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한 본능이었다. 절대 안 될 것도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고, 아픈 감정도 웃으며 포장하고 그렇게 해야만, 나와 아기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버틸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지쳐 있었고, 시간은 멈춘 듯, 아니 오히려 억겁처럼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출산을 하루 앞둔 그날조차도, 남편의 대출 문제로 또 한 번 싸움이 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은 평소처럼 퇴근 후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겉보기엔 평온한 하루의 끝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응어리가 고여 있었고, 나는 그걸 꾹꾹 눌러 담은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우리는 산책을 나섰고,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처럼 웃으며 걸을 줄 알았는데, 나는 무심코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말이었고 이전에 물어봤지만 묻고 싶었던 말을 또 꺼내고 말았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했던 거야?”
처음엔 담담하게, 그러나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우리 대화는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연애하던 시절에도 공익이었을 텐데, 그가 어떤 돈으로 어떻게 매일 차를 렌트해서 회사에 있는 나를 데리러 왔는지, 데이트 비용은 어디서 나왔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털어놓았다. 소액 대출을 받았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실망감이 몰려왔다. 말이 오가며 감정이 격해졌고, 만삭의 몸을 이끌고, 아니, 배속의 아기와 함께 새벽 2시까지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더 무거웠다. 그렇게 싸늘하게 식어버린 공기 속에서 하루가 저물었다.
그 다음날 아침, 진통이 시작됐다. 20분 간격으로 밀려오는 통증은 이제 막 진진통에 접어든 상태였다. 남편에게 연락했고,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점점 강해지는 복부의 통증 속에서 전날 밤의 싸움은 어느샌가 흐릿해져 갔다. 고통은 강했고, 생명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그렇게 내게 왔다. 상처투성이 마음에 닿은 유일한 따뜻함. 내가 다시 버틸 수 있게 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탄생조차 내 안에 썩어가는 감정들을 완전히 치유해주진 못했다.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밤낮 가릴 것 없이 수유콜에 응해야 했고, 가슴이 저릿한 새벽마다 유축을 위해 잠을 깼다. 체력도, 정신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남편은 운 좋게도 10일간 육아휴직을 받았고, 산후조리원에 함께 머물렀지만, 그 시간은 내게 온전한 쉼이 되지 못했다.
그는 치킨, 족발 같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었고, 본가에선 시어머님 눈치를 봐야 했을 테니, 나와 있는 동안만이라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싶었을 것이다. 사흘 정도는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흘째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새벽에 유축을 하던 순간, 거짓말을 했던 오만한 일들이 생각났다.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니, 도저히 더는 함께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냥 이제 안 와도 될 것 같아. 와서 네가 도울 수 있는 것도 없고, 우동이(태명) 맞을 준비하고 집에서 편하게 자.”
나는 가능한 마음을 누르며 부드럽게, 상처 주지 않게 말하려 애썼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내 심장을 조용히 짓눌렀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랑 있는 게 싫어? 난 자기랑 있는 게 더 좋은데.”
그저 피하고 자기가 저질러 놓은 집안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서 나의 옆에 있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 말이 왜 그리 무심하게 느껴졌을까. 어쩌면 그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출산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은 걸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이미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