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썩은 동아줄

말이 많을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건너뛰고는 내가 걸어온 길을 온전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이 장을 쓰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약 5년간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와 전 남자친구는 평범한 연애를 했기에, 나에게는 그의 사소한 추억들이 담긴 사진과 영상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노트북 속인지, 자취방 어딘가에 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다. 그 조각들은 그저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 생각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와 헤어진 지 오래되지 않고 지금의 전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그는 회사 앞까지 렌터카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고, 자신의 허상 속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내 자취방으로 갔다.

우리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 보내준 국과 반찬을 먹으며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말했다.

“전 남자친구랑 찍은 사진이나 편지지 같은 거 있으면 빨리 정리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이미 다 정리한 줄 알고 “당연히 다 정리했지!”라고 대답했다.

차라리 그 순간 그가 내 물건을 뒤져서 발견했다고 말했으면 덜 괘씸했을텐데 알면서 말로만 요구하는 게 오히려 더 싫은 것 같았다. 그 후에도 며칠 동안 그는 계속 물었고, 결국 여러 명세서와 영수증이 담긴 가방에서 편지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그 편지지를 자기가 처분했다고 했지만, 나는 필요 없으니 그렇겠거니 했다.

또 다른 날엔 내 노트북에서 사진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나는 놀라서 빨리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핑계라 들릴 수도 있지만, 임신 중 회사 생활,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남편 맞춘다고 퇴근 후에도 장거리 당일치기로 피곤했던 나는 정리를 계속 미루었고, 결국 몇 달 뒤에야 모든 것을 삭제했다.

내가 3번이나 신뢰를 잃은 남자와의 추억을 곱씹고 싶어서 일부러 남겨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나를 궁지 속에 그 일로 몰아넣었고, 더군다나 친정엄마에게도 이 일을 직접 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결국 이혼 앞두고는 그것을 ‘무기’로 삼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이미 지워버린 줄 알았던 사진과 영상, 그 남자와 나눈 사적인 음성 메시지까지 자신의 노트북과 휴대전화에 몰래 백업해 두고는 이혼 결정 후, 백업했다고 직접 연락이 왔다. ‘나만 유책 배우자인 줄 알지마. 너도 있어. 나만 나쁜 사람 아니야.’라는 얘길 하는 듯 따지고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있던 모든 분노와 슬픔, 무력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임신을 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품에 안고 살아내느라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그 시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수많은 변화와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내며 내 과거를 들추고, 내 감정을 훑고, 내 인격을 갉아먹었다.

결혼생활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이혼을 결심한 그 이후까지도 그는 나를 조용히, 집요하게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는 정확히 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감싸던 그 말들조차 결국은, 합리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참았다. 그는 내 남편이었고, 무엇보다 내 아이의 아빠였으니까. 이 모든 고통을 견딘 이유는 단 하나, 아이를 위해서였다. 내가 견뎌온 모든 침묵이, 그 모든 인내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건 오직, 아이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내가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의 본가는 경기도, 나의 본가는 경상도이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4시간 거리를 오가며 삶을 이어갔다. 시댁에서 지내는 건 몸도 마음도 한계였다. 그 일로 인한 말 없는 부담 속에서 나는 점점 산산조각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를 다시 숨 쉴 수 있게 한 곳은 경상도, 나의 본가였다.

본가로 돌아온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딸이자 엄마로 존재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 아기의 울음에 담긴 의미, 엄마로서의 마음가짐까지 하나씩 친정엄마에게 배우며 ‘엄마’라는 역할에 나를 적응 시켜 나갔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8월의 오후였다. 식탁에 앉아 있던 엄마는 나의 흔들리는 눈을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너희 임대주택은 몇 평으로 신청했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 집안에 시집간 딸이 임대주택에 산다는 것.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적이 잠시 흐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15평인가...”

엄마의 반응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의사 집안에 시집간 네가, 아기가 이제 막 기어다니는데 세 식구가 15평 집에서 어떻게 살아? 아버님이 의사고 어머님이 어린이집 원장이라며, 정말 그런 분들 맞아?”

나는 엄마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이미 감춰둔 이야기들은 내 안에서 무겁게 부풀어 있었고, 마침내 이렇게 터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그저 담담히, 자초지종을 엄마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엄마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남편의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연결되었고, 엄마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현석이 아버님. 저희 딸이 그러는데 현석이가 말한 것들이 전부 거짓말이라던데요. 정말인가요?”

“...아... 제가 은아랑 이야기할 때, 현석이 의대 합격하고 나면 그때 말씀드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알게 되셨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죠?”

“죄송합니다. 제가 아들을 잘못 키운 것 같습니다.”

“제 딸 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도 속은 거예요. 아기가 생겼으니 시댁이 어떤 분들이신지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주변 사람들, 친척분들께도 다 알렸는데... 우리가 뭐가 됩니까? 우리도 거짓말한 사람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태어난 아기는 무슨 죕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시아버지는 연신 “죄송합니다”만 반복하셨다. 그 목소리는 무력하게 느껴졌고 안쓰럽기까지 했다.

시부모님은 처음부터 아들이 그런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을 리 없다. 지금의 우리 아기처럼, 어릴 적엔 그저 작고 귀엽고 눈부신 존재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빛나던 시절이 있다. 무해하고 순수했던 시간. 어둠 속에 잠기기 전, 세상이 아직 차갑지 않았던 순간, 그런 시절이 한 번쯤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첫째인 남편이 장남, 장손 노릇은 못 하고 자신의 욕심으로 붙은 대학교는 가지 않고 어디서 여자애와 아기를 만들어 온 걸 보면 한 가정이 가장으로 대해 주는 것이 아닌 항상 마음에 걸리는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큰 거짓말을 한 걸 알게 되셨으면 남편의 이후 삶은 눈치 보며 사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그런 남편의 와이프로 살아간다면 그와 똑같이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날 이후, 나와 엄마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드리워졌다. 서로를 향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공기처럼 떠돌았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조금씩 지쳐갔다. 몸은 무거워졌고, 마음엔 독소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 누구도 가볍지 않았고, 그 어디에도 쉴 곳이 없다는 걸 알았다. 매일 버티며 살아내는 내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그 마음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만이 유일한 숨통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며, 엄마와 나 사이에만 통하는 정적 속의 연대가 생긴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연대는 조금씩 일그러졌다.

엄마는 점점 예민해졌다. 매일 마주하는 이웃들과 친척들, 외할머니 댁에서도 계속된 설명과 거짓말은 엄마를 지치게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끝은 늘 나에게 향했다.

더운 여름날, 가뜩이나 극도로 예민해진 우리 모녀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부딪혔고, 그 싸움의 화살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나의 가슴을 정확히 겨눴다.

“지금 넌 뭘 잘했다고 그렇게 큰소리쳐! 물론 현석이가 잘못한 건 있지만, 너라고 책임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 말은 내게 남편의 배신보다도 더 깊은 상처로 다가왔다. 마치 발밑의 딸이 꺼진 듯한 느낌이었다. 가장 의지했던 엄마마저 나를 제 3자처럼 바라보는 그 시선.

나는 집에서도 온전한 편 하나 없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이 집에서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냥 이 모든 게 내 탓인 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생각은 점점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진짜 집을 나가야 하나,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날 선 대화 끝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경제적으로 독립도 못 하고, 여기 빌붙어서 살아야 한다면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이야!”

그 말은 꽂혔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맞는 말이다’라고 되뇌어도, 그날의 나는 단단히 무너졌다. 그 말이 너무나도 가혹하게 느껴졌다.

적어 내리는 이 순간에도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니, 그 말은 지금까지도 내 안 어딘가를 짓누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고통스러운 장면이 지금은 또 하나의 ‘배움’으로 남는다. 나는 그 순간을 계기로 마음속에 단단히 새겼다. 내 아들에게는, 절대 이렇게 하지 말자. 절대 이런 말은 하지 말자. 스파크가 튀는 몇 번의 순간을 지나고, 하나, 둘 언덕을 넘을수록 마음은 조금씩 마모 되어 갔다.

아린 바람이 불어오던 12월, 그날은 마침 남편의 수능 성적 발표일이었다. 모든것이 서서히 정리되어 가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듯한 정적이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척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수능 성적은 확인 해봤어?”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건넨 질문이었다.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지만, 혹여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도 나는 그를 다독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인생은 길고, 대학교 하나가 그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어엿한 세 가족이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방법은 분명히 있을 테니까. 꼭 눈부시지 않아도, 평범하게라도 성실히 살아갈 길을 함께 찾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질문에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n수생들은 오늘 성적 확인이 안 된대. 조회 안 된다는 팝업창 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이 날 뭐로 생각하는 걸까.

수능 성적 발표일은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시스템 아닌가. 어쩌면 또다시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 확인이 안 될 리가 없어. 팝업창 그렇게 뜨면 나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줘. 오늘 모든 수험생이 같은 날 확인하는 건데 무슨 소리야. 아님 내가 직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전화해서 물어볼게.”

내 목소리는 차분하려 애썼지만,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차가운 분노가 굳어지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도 거짓이라면, 이제는 결정을 내릴 시간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남편’,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 어떤 길을 선택했든, 피하지 않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고, 어떤 실패든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결코 거짓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진실과 책임, 그 두 가지는 다시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번번이 그 실패 앞에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고, 늘 회피하고 둘러댔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 속에 더 이상 이 사람이 존재하지 않음의 진실이 또렷이 떠올랐다. 나와 나의 아들, 그리고 남편이라는 사람. 우리 셋이 함께 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보내달라는 팝업창 사진은 보내주지도 않고 방귀 낀 놈이 성낸다는 말과 같이 나에게 큰소리를 치며 전화는 끊겼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쉰 뒤, 말없이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정말 혹시 그 말이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체념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졸업생들도 성적 다 확인 가능한가요?”

들려오는 대답은 정확하고도 간단했다.

“네, 오늘 성적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의 희망이라 생각했던 동아줄은, 알고 보니 이미 썩어 있었다. 나의 표정을 보고 있었던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또 거짓말했어?”

엄만 바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혼해. 지금 이 상황에 또 거짓말하는 놈은 사람도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이유도, 흔들릴 여지도 없었다.

저런 사람 밑에서 아기를 자라게 할 수도 없다. 아니, 안된다.


가족은 단지 ‘함께 산다’라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지켜야 할 약속이며, 함께 짊어지는 책임이다. 그 책임을 외면한 사람과의 관계는 더는 유지될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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