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진심은 늦게 도착하지 않는다.

바로 엄마는 시아버지께 또다시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 연결음이 길게 울리는 동안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이윽고 시아버지는 전화를 받으셨고 엄마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현석이가 또 수능 성적에 대해 거짓말을 했네요. 한두 번도 아니고…. 은아 아들이 대체 뭘 배우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이혼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시아버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랑 현석이가 내려가서 정말 사죄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요. 안사돈이랑 함께 내려와 주세요. 이혼할 마당에 제 딸이 사돈분들께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질책 받아야 하고 현석이도 지금까지 한 일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은아 통해서 일정 잡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엄마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도, 시아버지도…. 그들의 말과 행동은 내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사돈이 직접 전화해서 ‘이혼 얘기를 직접적으로 전하면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 더 심사숙고 해주실 수 있냐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루라도 빨리 저희가 내려가겠습니다.” 혹은 여의찮다면 “현석이라도 먼저 내려보내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상식이 아닌가.

그들의 방식은 어떤 책임감도, 진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는 그저, 사태의 본질은 외면한 채 형식적으로 맞추려는 행동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 흘렀고, 이제 곧 남이 될 그분들이 내려왔다. 남편은 그 일주일 사이 내려오지 않았고 연락은 한 통도 없었다. 한적한 카페를 예약해 둔 우리는 아기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로 가는 차 안의 나의 아들이 해맑은 소리가 가득하지만,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시부모님과 남편은 우리 부모님과 함께 카페 2층 룸으로 들어갔고 나는 커피를 주문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혼전임신으로 상견례를 하고, 두 번째 만남이 이혼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마주 앉은 이 자리가…. 참 기이하고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따라 내려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 행동이 참 황당했다.

남편이 물었다.

“잘 지냈어?”

내가 저런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다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눈치나 보며 주눅 들어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면서도 잘 지냈냐는 걸 물어보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게 맞구나. 아니, 애초에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커피를 받아 들고 올라가던 순간, 남편이 말했다.

“내가 들게.”

그 말 한마디조차 낯설고 불쾌했다. 금이 간 신뢰 앞에서, 저런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가볍게 그 한 마디는 무시하고 2층 룸에 도착하니, 엄마는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하나하나 모든 사실을 짚어가고 계셨다. 아들은 친정엄마 옆에 앉아 조용히, 멀뚱히 주위를 둘러보고만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우리 아기가 너무도 가여워 보였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으로 말도 많고 감정도 복잡한 어른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그저 낯선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그 어린 아기의 눈빛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이 일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너무 작은 아기인데, 그 순간만큼은 감정에 휘둘려 누구도 그 아이를 먼저 바라봐 주지 않는 현실이 더 미안하고 죄책감에 휩싸였다.

시아버지는 모든 걸 들으시고는

“정말 죄송합니다. 제 아들이 정말 영화 같은 일을 저질렀네요. 제가 아들을 잘 못 키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사죄하고 머리를 조아리는데도 그 자리에서도 남편은 “죄송합니다”라는 한마디를 끝내 하지 않았다. 나는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눈물이 났다. 하지만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남편과 시부모님을 향한 배신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결국 남편에게 터뜨리고 말았다.

“넌 어떻게 내가 저지른 일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데도, ’죄송하다’라는 말 한마디를 안 해?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울며 넘겼는지, 남편은 전혀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만 떨군 채 내 눈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무거운 일을 저질렀다는 걸을 외면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여전히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그때 시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현석이가 정신과를 다니고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라서 조금만 이해해주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말, 이 순간 여기서 ’제정신‘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다니.


나는 더는 참지 않았다.

“아버님, 제정신이라니요…. 1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저 사람이 저지른 일을 묵묵히 견딘 저, 그런 사람에게 시집 보낸 걸 알면서도 말없이 지켜본 저희 어머니,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저희 아버지의 무너진 마음은요? 비교조차 되지 않아요.”

순간, 공기가 멎은 듯했다. 말없이 아래만 바라보던 시어머니, 책임도 감정도 없는 눈빛.

이 자리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는걸. 그들의 태도는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계시던 우리 아버지가 말을 꺼내셨다.

“이만 더 얘기할 것도 없을 것 같네요... 은아야, 아기 한 번 안겨드려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정말, 그들이 아기를 안을 자격이 있을까? “그 가족 중 그 누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마치 이 모든 일이 남의 일처럼, 감정 없는 얼굴로 아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차에 올라,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듯 문을 닫으려는 그때, 남편이 아니 전남편이 될 사람이 허둥지둥 뛰어왔다,

그제야 그의 입에서 부모님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건 그저 ‘있어야 할 말’이기에 꺼낸, 형식적인 퍼포먼스에 불과했다.

진심은 늦게 도착하지 않는다. 그건 애초에 없었을 뿐이다.

시부모님은 나에게 조용히 봉투를 내밀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사렴.”

그 순간,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것이 그들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라는 걸. 말 대신 돈, 사과 대신 물질, 그리고 책임은 언제나 건너뛰고 감정은 생략된 채.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봉투는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의미가 묻어 있었다. 때로는 돈이 가장 무거운 짐이 될 때가 있다. 그 봉투를 받는 순간, 내가 견뎌온 모든 시간이 그저 금전적 보상으로 환산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시간을 살지 않았다. 내 고통은, 값으로 매겨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혼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 집안에는 한동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로가 조심스레 말끝을 흐리고,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 와중에도 우리 가족이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오직 아기 덕분이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비추는 한 줄기 빛 같았다.

그 빛줄기, 그 존재는 우리에게 은혜였고,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먼 훗날, 지금은 맑고 해맑은 그 아이가 성장하여 나를 향해 날카롭고 단단한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걸. 혹여나 그 아이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내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해도, 나는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기에게 너무나도 많은 사랑과 빛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빚은 평생 갚을 수 없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남편과의 이혼은 결정이 났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문서 하나로 완전히 끝내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아이의 아버지’로 남는다.

그리고 남은 건, 현실적인 문제. 양육비.

‘양육비’라는 단어는 짧지만 묵직했다. 마치 한 글자마다 무게가 실려 있는 듯했다.

남편은 현재 소득이 없으므로, 일반적인 수준의 양육비 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 현실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그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야 했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할 말을 잃어갔다.

80, 70, 40, 그리고 20…. 그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금액은 20만 원이었다. 그는 어찌 한 아이의 아빠가 이토록 무책임할 수 있을까? 문득, SNS에서 읽었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이혼할 때, 남편과 같은 도시에 산다면 남편에게 양육권을 주고 여자가 양육비를 주는 게 낫다. 차라리 여자가 면접 교섭을 하는 게 낫다. 남자들은 자식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저 혹처럼 느낀다. 그래서 양육비도 제대로 안 줄 확률이 높다. 여자가 돈을 벌어 주는 편이, 차라리 자식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사는 방법일 수 있다.’

물론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내 앞의 현실은 그 말에 가까웠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서, 서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유책 배우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과 양심을 기대했을 뿐이었다. 적정한 금액을 제시하고, 깨끗하게 정리되는 협의 이혼. 그렇게 정돈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나의 순진한 바람이었다.


머뭇거리던 끝에, 결국 나의 발걸음은 법원 근처 법무법인 사무실을 향했다. 한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길이었다. 내가 이런 길을 걷게 될 줄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평생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현실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차가운 도로 위를 따라 걸으며,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꿈을 꾸는 듯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한 법률사무소 사무실, 엄마와 나는 말없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우리 사이를 지나고, 그 공기를 가르며 우리는 조심스럽게 한 변호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난 변호사 앞에서 나는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말할 수 없는 허망함이 몰려왔다. 입 밖으로 내뱉는 말들이 나의 과거를 정리하는 동시에, 나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계약서에 서명하며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 소송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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