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그 단어는 늘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불행한 것만 같은 뉴스, 누군가의 드라마틱한 사연. 나는 그저 화면 속 인물에게 안쓰러움을 느낄 뿐, 그 일이 나에게 닥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이혼 소송 중인 딸을 둔 부모’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은 생각보다 더 깊고 무거운 죄책감을 안겼다. 나 하나로 인해 부모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듯했고, 가족의 대화 속에서도 묵직한 침묵이 길어졌다. 나는 나 자신보다 부모님을 더 걱정하게 되었고, 그 걱정 끝에 죄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지만, 그 감정 속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나의 아들.
내가 매일 같이 이름을 부르고, 품에 안고, 바라보는 그 아이. 그 아이를 생각하면 나는 울 수 없었다. 우울하고 초점 없는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슬픔에 잠긴 얼굴로 아이를 대하는 엄마는, 우리 아이가 가져야 할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아기에게 웃는 얼굴로 남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우리 엄마는 언제나 행복해 보였어.’
그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이 모든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겨울이 시작되던 그 시절, 그때까지만 해도 고통의 시간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소송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 들어오고나서부터, 나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깊고 긴 터널인지 알아내기 위해 인터넷과 SNS를 밤낮없이 뒤졌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작하지 말라’고 말했고, 이혼 소송을 겪으며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넘쳐났다. ‘그저 시작을 말리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지만, 그것들이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예감이 마음 한쪽을 짓눌렀다.
나는 아직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 고통을 몰랐고, 그 말들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소송이란 단지 마음의 무게만이 아니라, 내가 선택했던 그 남자, 남편, 아이 아빠의 민낯을 어디까지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막막한 두려움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던 날이었다. 내가 보낸 이혼 소장에 대한 답변서가 도착했다. 그 시답잖은 답변서에는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라는 뻔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책 배우자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읽어볼 필요도,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그 답변서에 묶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진부한 문구들이 오히려 나의 결심을 더욱 굳게 다져주었다.
*참고: 이혼 소송에서는 처음 소를 제기 한 사람을 '원고'라 하고 그 소를 받은 사람은 '피고'라 한다.
피고는 소를 받으면 바로 반소를 내도 되고 답변서를 내고 보통 한 달 안에 반소를 보내도 된다.
그리고 1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5월 중순쯤, 변호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상대방이 나에게 반소를 제기했다는 소식이었다.
역시나 그 답변처럼, 자신이 저지른 일들은 모두 잊은 채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는 일들을 끼워 넣어 마치 나에게도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다는 듯 뻔뻔한 얼굴, 그 뻔뻔한 입으로 상대 변호사에게 말한 그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사람들이 반소 소식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명이 짧아지는 것 같다고 하는지, 그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분노, 그리고 끝없는 싸움의 무게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체감했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은 벌써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 그저 자신만을 생각하는, 남겨진 껍데기일 뿐이었다.
마지막에 드러난 그의 진짜 속내는 양육비와 위자료를 감액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혼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그는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는 너와 아기와의 인연을 끊고 싶다.”
“거리가 멀어서 한 달에 한 번 면접 교섭이 힘들 것 같다.”
“나는 빨리 새 출발을 하고 싶다.”
어떤 날은 내가 가진 조건들을 부러워하는 듯한 말과 칭찬도 했다.
“넌 빨리 새 출발 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
그럴 때면 머릿속은 그저 물음표 하나가 떠 있는 듯했지만, 다음 날이면 또다시 날 깎아내리는 말투로 바뀌곤 했다.
“전 남자친구 사진 한 장 없었냐? 넌 유책 될 사항이 하나도 없는 줄 아냐.”
소름이 돋을 만큼 급격하게 변하는 그의 감정에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굳이, 이제는 제삼자가 될 그에게 내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확신했다. 이혼을 하루라도 빨리 결정하길 정말 잘했다는 것을.
그 모든 혼란과 상처 속에서도 내 마음은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1차 재판 기일이 잡혔다. 변호사님이 대리 출석을 해주셨고, 재판에서 판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주셨다.
“혼인 기간이 짧고 재산 분할도 할 필요가 없으니, 양육비와 위자료를 책정하고, 최대한 빨리 소송을 마무리합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주셨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솔직히 나는 이 일로 더 이상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소송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와의 끈은 더 질척하게 이어질 것 같았고 나는 더는 그에게 어떤 감정도 쓰고 싶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남편에게 큰 액수의 위자료나 양육비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혼 후에도 성실히 양육비를 보내줄 거라는 믿음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저, 그가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랐을 뿐이다. ‘그래도 미안하긴 했구나’, ‘그래도 인간적인 후회는 있구나’ 그 한 조각의 책임감조차 그에게서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그는 마지막까지 내 삶을 파고들었다.
아기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낱말 카드를 가지고 놀고 있던 어느 오후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부산경찰서 이도현 수사관입니다. 김현석 님께서 불법 촬영으로 고소하셔서 조사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나도 드디어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아보는구나.’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름. ‘김현석’이라는 세 글자가 들리는 순간, 웃음은 헛웃음으로 바뀌었다. 장난처럼 찍었던 사진들이, 그의 처지에선 ‘동의 없이 촬영된 불법 촬영물’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거웠고, 말문이 막혔다. 무엇보다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우리 아기와 나, 우리 둘만 생각하고 살고 싶었다. 이미 충분히 아팠고, 충분히 견뎠고, 더는 바닥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또다시 내 삶에 발을 디뎠다. 내가 피하려 애쓴 세계로, 조심스레 지켜온 일상 속으로, 뻔뻔하게도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우리 가족 모두를 또다시 어둠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돌처럼 굳어졌다. 더 단단해지고, 더 무뎌졌다. 드세졌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엄마들은 용감한 게 아니라, 버텨야 했기 때문에 강해진 거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붙잡기 위해 누군가는 눈물 삼키고 일어섰어야 했다. 울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다시는 못 일어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평범한 하루인 척’ 살 수밖에 없었던 삶. 그래서 “엄마”라는 존재는 그렇게 강해질 수밖에 없는 거였다.
누군가는 내게 물을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나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런 사진을 왜 찍은 거야? 그런 짓을 왜 해?” 그래서 말을 더 이어나가자면, 사진을 먼저 찍었고 찍고 싶어 했던 것은 남편이었다. 나는 말없이 따라갔다. 그가 내 남편이 될 사람이니까. 내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니까. 내가 평생 함께할 사람이니까. 내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니까. 내가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고 믿었으니까. 그저 그런 이유로, 말없이 묵인하고 지나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순간에도 나는 누구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사람이었다. 그를 신뢰했고, 그의 책임감을 믿었기에 하지만 그는 그 신뢰를 꺾었고, 책임에서 도망쳤다.
그 후로 나는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도 헷갈렸다. 하나만은 분명했다. 우리 가족에게 더 이상 상처를 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걸 나 혼자 떠안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저 마음 가까운 친구 몇 명에게만 털어놓았다. 그 친구들은 내 말을 다 듣고도 다정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 누구한테 얘기하겠니?”
“이럴 때 얘기하라고 친구가 있는 거야.”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위로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놀라고 있었다.
내 아들, 자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어떻게 이런 행실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지.
이토록 끝없이 나를 해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