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길을 걸으며, 내가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기는 시간제 보육에 맡겨야 했고, 무거운 마음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손끝과 가슴 한구석이 떨렸다. 경찰서라는 공간 자체가 낯설고 무겁게 느껴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갈증이 나는 듯했다. 1층에 도착해 담당 형사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고, 나와 같은 시간대에 조사를 받으러 온 분과 함께 형사실로 향했다. 그 남자의 고소로 인해 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허비한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짜증이 났다. 그런데도 형사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나에겐 너무나도 낯선 풍경이었다.
담당 형사님은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따뜻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무겁게 짓눌렀던 마음 한편에 조금씩 안도의 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조사의 절차와 과정을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나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먼저 물었다.
“혹시 이 고소, 상대방 변호사랑 같이 한 건가요?”
“네. 맞습니다.”
간단명료한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남편이 선임한 변호사가 ‘원고는 혼인 파탄 사유가 딱히 없으니, 피고한테 고소할 것도 없는지 물어보고 고소 비용이라도 받아내자.’ 라는 계산했을 거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유책 배우자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 양육비 줄 돈은 없고 고소할 돈은 있다는 그 뻔한 현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조사 질문들은 하나하나 구체적이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이혼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진을 찍게 된 경우가 궁금합니다.”
사진첩에 있던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여주며 그때의 상황과 심정을 설명해야 했다.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내 목소리가 어땠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부끄럽고 숨고 싶었다. 어쩌면 남편도 바로 그 점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말했다.
“형사님, 전에 이혼 결정이 난 후에도 상대방이 자꾸 연락을 해왔어요. 사진을 지우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전 이미 다 지운 상태였어요. 그런데도 계속 연락을 했던 걸 보니, 제 계정이 상대방 아이패드에 로그인된 상태라 사진첩이 동기화가 안 돼서, 사진이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소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에 형사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법 촬영으로 고소하기 전, 자신의 아이패드를 증거물로 제출하기 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은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자신의 아이패드에 다른 사람 계정이 로그인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다. 더군다나 타인의 개인 정보와 사진에 무단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범죄임에도, 그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한심함과 분노가 교차했고, 자신의 유책 사항은 망각했나 싶었다.
더욱 웃긴 사실은
“이혼 소송 중에 자신의 낯 뜨거운 사진을 직접 프린트해서 고소라는 사람들이 많나요?”
형사님은 세상일을 모든 겪은 듯한 표정이 스치며 답했다.
“네…. 많습니다….”
세상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기묘하고, 이해 불가능하고, 상식 밖인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명백하게 몰래 찍은 것이 아니라면, 휴대전화 메시지에 서로 사진을 주고받은 정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 휴대폰을 포렌식 해도 그런 대화 내용이 복원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에게 포렌식을 요청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그가 포렌식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이지,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서로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지, 한숨이 났다.
며칠 뒤 핸드폰 포렌식을 위해 집으로 오시겠다는 형사님의 말을 듣고, 나는 부모님께는 이 일을 숨기기 위해 모든 일정을 촘촘히 맞췄다. 핸드폰을 건네는 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차에 놔둔 게 있다.”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잠시 나가 조용히 형사님께 휴대폰을 건넸다.
그리고 일주일 뒤, 포렌식이 끝났다는 연락과 함께 형사님이 다시 핸드폰을 돌려주시러 왔다. 나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처럼 몰래 집을 빠져나와 조용히 휴대폰을 받아왔다. 형사님은 “이전 대화가 복원이 됐다고 하네요. 상대방에게도 포렌식 요청은 했습니다. 진행되는 것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바쁘신지 인장만 받으시고 부리나케 가셨다. 그렇게 사건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모든 과정이 불쾌했고, 또 허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고, 누군가의 악의와 어리석음에도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인생이라는 건, 때로는 어이없고, 이해할 수 없고, 너무나 유치한 일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안에서 나를 지키고 내 나이를 지키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 아닐까.
이 이야기는 8월 초까지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제, 사건의 마지막 장은 이쯤에서 잠시 덮어두려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혼 소송, 고소 건도 언젠가는 제자리에 찾게 되겠지. 모든 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싶었던 날도 있었고, 다시는 이 길을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 옆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조용히 흘리던 반도 있었다.
어떤 날은 억울함과 분노가 나를 미치게 했고, 어떤 날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가끔은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라 숨이 막히기도 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되뇌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 아들을 지키기 위해 이 싸움을 선택한 거야.”
이혼 소송과 형사 고소라는 두 개의 긴 싸움이 우리 사이에 놓였을 때, 우리는 서로의 가장 밑바닥까지 마주해야만 했다. 특히 유책 배우자의 바닥은, 말 그대로 지하 암반수 아래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이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감정과 말, 행동들이 속속 드러나며, 그와 나는 서로의 상처와 결핍, 분노와 절망까지도 피할 수 없이 직면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마치 땅속 깊은 곳을 파헤쳐 감춰진 암석을 끌어 올리는 일처럼, 우리가 묻어두었던 진실들까지 모두 끌어올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배웠다. 진심은 끝까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고, 관계가 깨진 후엔 최소한의 도리조차 사라진다는 것도.
나는 정말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한 여자를 무척 사랑해 준 남편이었고 한 아이의 아빠니까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킬 거라고. 하지만 그런 기대를 무너뜨렸다.
이제, 이 기록의 마지막 장은 그 아이의 이야기로 채워보려 한다. 모든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나를 숨 쉬게 해주고, 눈물로 얼룩진 하루 끝내서도 그 아이의 따뜻한 손을 잡으면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았다.
나의 아들은 내가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만든 이유이다. 이제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마지막 장엔 조심스럽게 꺼내어 써보려 한다. 이 기록이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래도 살아 볼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건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