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나의 가장 소중한 귀한 손님

어둠 속을 오래 헤매던 어느 날, 내게 고요한 선물이 찾아왔다. 삶이란 게 이렇게도 예고 없이 방향을 바꾸는구나, 그 아이는 그렇게 내 삶에 들어왔다. 그 조용한 존재 하나로 인해 나의 모든 길은 달라졌고,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뒤를 돌아보면 혼란과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앞으로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아이, 내 아기. 내 인생에 찾아온 가장 조용하고도 확실한 변화.

어른들은 가끔 아기를 보며 말한다.


“아기일 때 효도 다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하게 웃는다. 나도 언젠가는 그 말을 가볍게 흘려들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통째로 삼켜본 사람이다. 온몸으로, 마음으로, 매일의 수면 부족과 온갖 감정의 요동 속에서, 나는 내 아기가 나에게 얼마나 큰 효도를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솔직히 나는, 지금 부모님께 떳떳하지 못하다. 경제적으로도, 삶의 선택 면에서도 부모가 바랄만한 딸은 아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혼전임신을 하고, 그마저도 이혼을 겪는 모습을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겠는가. 이건 내가 계획했던 삶이 아니었다. 어쩌면, 어떤 점에서는 내가 아닌 타인의 계획 속에 휘말렸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결국엔 내 선택이었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인생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택했다. 세상의 시선도, 부모님의 한숨도,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모두 감수하면서도 그 생명을 선택한 것은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본능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사랑이었다.


혹여라도 내 아이가 먼 훗날 나와 같은 삶을 살게 되더라도, 나는 절대로 그 아이의 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실수였을지 모르는 선택, 어쩌면 미성숙한 판단일 수 있었던 결정이었더라도 자식의 삶을 원망하는 부모가 되는 순간, 그 자식은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 외로움을,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기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웃어주고, 힘든 일이 닥치면 어떤 말도 필요 없이 안아줄 수 있는 사람. 마음 둘 곳 없이 무너지는 날엔, 아무 말 없이 등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엄마 말이다.

부모란, 자식이 등을 찌르더라도 끝내 그 자식을 안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이 한때는 과장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안다. 그게 사랑이고, 그게 책임이며, 그게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숭고한 감정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 이 아이에게 크고 깊은 빚을 지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이유는 이 아이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사실 나는 일을 좋아했다. 자기계발이라는 단어에 목을 매며, 경력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커리어라는 사다리를 오르고 싶었다.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내가 세운 계획대로만 흘러갈 줄 알았다. 결혼도, 출산도, 사회적인 안정도 모두 ‘내 때’에 맞춰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혼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하루 아침에 모든 계획이 산산이 부서졌다.

아기를 품은 순간부터, 이 삶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고통을 겪든, 어떤 좌절에 빠지든,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생명 하나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30년 인생, 그 안에는 숱한 무너짐이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가족이라 불리는 이들에게서조차 상처받고, 혼자라 느꼈던 밤을 수없이 지났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지금, 나는 안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도 말없이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사람들은 흔히 인생은 혼자라고 말한다. 각자의 무게를 지고, 각자의 시간을 살아야 하기에.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기쁜 일은 함께 나눠야 더 기쁘고, 슬픈 일은 털어놔야 견딜 수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모른다는 건 곧,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사람들 사이로 나아가고 있다. 혼자라는 감각에서 벗어나, 이제는 "같이"의 온기를 다시 느끼고 싶다. 무너졌던 자리에서 다시 걷기 시작한 건 내 아이가 나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그 고요한 선물 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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